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르조 May 17. 2022

[팔 골절 일기] 사고 당일

220211

출근길이었다.


몸을 안장에 싣고 페달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집에서 회사 근처 자전거 정류장까지는 약 800m. 좌회전-우회전-좌회전하면 끝난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바람을 맞으며 이렇게 가까운 거리로 출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에어팟에서는 Weeknd의 <Sacrifice>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완벽한 금요일 아침이었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트에 신이 나서 속도를 너무 낸 게 문제였을까. 우회전을 하면서 자전거를 지나치게 기울였던 걸까. 아직 온전히 녹지 않은 땅 탓이었을까. 뒷바퀴가 미끄러지면서 균형을 잃은 나는 바닥에 고꾸라졌다. 왼팔이 첫 번째로 땅에 닿아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턱, 무릎, 발목에도 조금의 찰과상이 있었다. '몸에 또 흉이 지겠네.'라고 생각하면서 바닥에서 일어나던 찰나 왼팔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우선 자전거를 일으켜 세우고 자물쇠를 잠그려는데 왼팔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8년 전, 무릎을 다쳤을 때와 같은 차가운 감각이 엄습해왔다. 이거 큰일났다.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뚝뚝하고 왼쪽 신발에 피가 떨어졌다. 마침 한 시간을 공들여 자전거 모양의 그림을 붓으로 손수 새긴 흑백 반스였다. 신발 표면의 자전거 핸들과 바퀴 사이로 뜨겁고 빨간 것이 물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시계를 봤다. 8시 56분. 우선은 회사에 얘기해야한다. 팀장님께 전화를 드리고 병원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2차 병원으로 향했다. 팔 근육이 움직여지지 않고, 육안으로 봐도 조금 안쪽으로 휜 것이 동네병원에서 고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수술할 수밖에 없겠구나 직감했다.


병원에 도착해 접수하고 진료까지 대기 시간이 적지 않았다. 몸이 아픈 채로 대기표를 뽑고 절차를 기다리는 건 약간은 서글픈 일이다. 언제나 부족한 자원으로 다수의 환자를 상대하는 병원에서 관료화된 시스템은 필수불가결하겠지만. 진료 결과 2차 병원에서 수술할 수 있는 수준의 상해가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 간단한 응급처치와 깁스를 해주시고 대학병원 진료 의뢰서도 써주셨다. 강동에 있는 어느 대학병원을 추천해주시기도 하셨다. 잘하고 예약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바로 다른 병원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방금 얘기한 "잘하고 예약이 수월한 것"이 어떤 기준이 되어서, 서울 시내 대학병원을 검색하고 최대한 빨리 진료와 수술이 가능한 곳으로 갈 심산이었다. 예상했지만 예약은 쉽지 않았다. 두 개 대학병원에게 한 달 이상 대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서는 택시를 잡아타고 강동으로 향했다. 강동으로 가는 길에 네 개 대학병원에 다음 주 예약을 잡는 데 성공했다. 돌이켜보면 최악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한 것 같다. 잠시 고민하다 결국 어머니께 전화한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바로 서울행 기차를 타신단다. 또다시 불효자가 된다.


대학병원에 도착해서 접수했을 때는 11시였다. 1시 반에 담당 교수님이 진료 시작이라 기다려야 했다. 그마저도 예약이 꽉 차있어 선생님이 모든 환자를 다 보고서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부러진 팔을 부여잡고 진료실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6시가 조금 안 되어 마침내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의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보고 내 얼굴을 보더니, "어떻게 그렇게 하나도 안 아픈 척을 하고 있어요? 이거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내가 입은 상해의 이름은 '요골, 척골 개방형 골절'이었다. 팔꿈치와 손을 잇는 전완의 뼈가 두 개 있다. 치킨 윙의 두 번째 마디와 같은 구조다. 그게 두 개 다 부러진거다. 어쩐지 아프더라.


그새 도착한 어머니는 여간 걱정이 아니신지 선생님께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선생님은 밥 짓는 것처럼 어렵지 않은 수술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가끔씩 밥을 못 지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잘되고 그러잖아요."


병원을 나와 어둑어둑해진 서울을 택시로 가로질렀다. 후회가 밀려왔다. 조금만 더 속도를 줄일 걸. 뒷바퀴 마모된 거 알고 있었는데. 교체해 둘 걸. 겨울 도로는 미끄러운데. 조금만 더 조심할 걸. 다시 그 순간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신기한 건 후회를 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인식하는 순간 '이 만한게 어디야.'로 생각이 옮겨간다는 점이다. 오른손잡이에게 사지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왼팔을 다친 게 어디야. 머리로 착지하지 않은 게 어디야. 차에 부딪치지 않은 게 어디야.


스스로를 조금 더 소중히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가진 것에 감사하자.

작가의 이전글 여름이 오기 전에 무량사 템플스테이 둘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