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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Jul 31. 2024

핀이여 안녕

240731

왼쪽 팔에 마지막 핀 제거 수술을 했다.


출근길에 자전거에 넘어져 '22년 2월에 처음 다쳤으니 핀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2년 하고도 5개월의 세월이 걸렸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고통도 느껴보고 하고 싶은 운동도 하지 못했다. 무기력한 나날들이 있었다.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 찾아오나, 하늘을 원망한 적도 있더랬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나는 불편한 팔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농구, 축구와 같이 부상 위험이 높은 구기 종목을 피하고 스트레칭, 근력운동, 수영과 같이 오래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았다. 몸에 부담이 없고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다는 건 이런 운동들의 큰 장점이다. 더 이상의 부상은 겪고 싶지 않다. 2025년 목표는 정형외과 가지 않기다.


무엇보다 절제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나는 태생적으로 에너지가 많아서 이를 분출하다 나를 혹은 가끔은 타인까지도 다치게 하는 편이다. 자꾸만 밖으로 발산하려는 에너지를 조금 더 안으로 수렴하도록 스스로를 가다듬는 시간이 되었다. 숨이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명상도 했다. 운동을 할 때도 특정 순간에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쓰기보다는, 내가 가진 힘을 시간을 들여 일정하게 사용했다. 예를 들어, 100m 자유형을 시간에 쫓기며 하지 않고 2km 자유형을 편안하게 수행하는 식이다.


핀이 내 몸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조금 더 차분하고 성숙해진 기분이 든다. 이젠 술 마시면서 친구들과 왁자지껄 웃고 떠들 때 느껴지는 솟구치는 기쁨보다는 일요일 아침에 거실에 들어오는 햇살의 평안함이 좋다. 병은 필연적으로 사람을 고립시킨다. 혼자 직면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더 돌아보고 더 정제될 수 있었다. 이제야 청소년기를 졸업한 것 같다.


수술하고 회복하는 동안 내 곁을 계속 지켜준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살가운 말이나 따스한 손길과는 거리가 있지만, 묵묵하게 내 옆에 있었다. 수술을 마치고 난 밤에도, 그 이후 이어진 일주일 남짓한 회복 기간을 함께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맘껏 시켜 먹고 자고 싶을 때 눈을 감았다.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나날이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다는 사실에 몇 번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행복감에 가려 응당 느껴질 고통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다. 


멋스러운 말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그저 손을 잡고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그저 그에게, 삶에게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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