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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의도시락 Apr 07. 2023

도시락 8일

계란말이에도 뼈가 있다 - 계란말이

오늘의 메뉴

야채계란말이

소시지구이

김치


’계란말이에도 뼈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늘 일이 잘 안되던 사람이 모처럼 좋은 기회를 만났건만, 그 일마저 역시 잘 안됨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나에게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데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일이 떨어졌다. 직장인들이 의례 그러지 않는가. 회사 일이 무료해질쯤 새롭게 다른 일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때 소풍가는 어린애마냥 들떴었다. 회사에서 나를 인정하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그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한 상황이었다. 먹고 사는게 힘들진 않지만 이렇게 기분이 나빠도 때가 되면 얄밉게도 배는 항상 고파진다. 그래서 나의 기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아무 생각없이 만들 수 있는 계란말이를 도시락 메뉴로 만들기로 했다.

평소에도 도시락 메뉴로 계란말이를 많이 하지만 오늘의 계란말이의 목표는 ‘무념무상’.


계란말이는 달걀을 팬에 얇고 넓게 부친 뒤 만 음식이다(백과사전 정의). 반찬으로도 먹지만 술안주로도 먹는다. 계란만 이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야채 등을 다져 넣거나 김을 넣기도하고 명란젓을 넣기도 한다. 난 자투리 야채를 계란물에 투하 시키고 정성스레 예열된 후라이팬에 조금씩 붓기 시작한다.

이 작업을 할때면 머릿속에서 다른 생각들은 사라지고 계란을 말아야할 타이밍과 불세기가 높은지 너무 낮지는 않은지 고민하며 어느 크기정도로 접어야 크기가 적당할지 생각한다. 그 외에도 찢어지지 않을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을지 계란을 말다가 다른 한쪽에 계란물을 붓게될 때쯤 연결이 잘되게 부엇을지 등 온전히 계란말이에만 집중하게 된다.

‘무념무상’을 생각하며 만들지만 머릿 속엔 무념무상보다 ‘유념유계’가 더 어울리는 상황이다.


내가 원하는 한입크기에 두툼한 계란말이가 완성되면 한쪽에는 큰 소시지 하나를 구웠다. 단백질 옆에는 고기지.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소시지하나를 칼집을 내고 노릇하게 익혀주니 더 먹음직스러웠고 도시락 통에 담기 시작했다. 도시락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생각하지도 않던 플레이팅도 생각하게 되면서 못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계란에도 뼈가 있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해서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시락을 만들었는데 스트레스 받던 생각은 한켠에 두고 온전히 음식에만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니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을까.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게 뜻대로 안되는건 아니었다. 지금의 계란말이처럼 계획하고 조심스레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걱정하고 다시 계란을 말고 나중엔 같이 곁들여 먹을 것 까지 생각하는 모습이 결국 나의 내면을 길들이고 있는 지금과 무엇이 다를까. 회사에서 일이 틀어졌다고 우울해하는게 아니라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 도시락 속 삶의 지혜였다.

오늘은 남은 쪽파를 뿌려주고 사진을 찍고보니 색감이 좋아보이는 도시락이라 꽤나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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