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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결과, 부모의 욕심(EP07)

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2 - 앨빈의 독서나무

by TsomLEE 티솜리

아이(앨빈)는, 아니 초6 아이의 엄마(풍뎅이)는 시간과의 싸움 중이다. 아니 싸움은 아니다. 내 아이에게 더 적절한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 과정과 결과. 그 둘 사이에 부모의 욕심이 개입한다. 부모가 둘 중 어느 쪽에 방점을 찍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삶도 달라진다.

수학과 청담 숙제, 원서리딩 좀 하고 남는 시간에 독서하기는 참으로 시간이 얼마 안 된다. (출처: 아내의 블로그, 2014.4)



1. 아내(풍뎅이)의 글 (2014년 초6-1)


2014.03.17


Alvin's 리딩트리. 2014.3.10 ~ 2014.3.16. 9권. 딱 책 읽기만 하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청담영어학원 일주일에 두 번 가야 하고 그에 딸린 인터넷 숙제, 교재 숙제, 일주일에 120개의 단어 암기. 수학도 이제는 두 시간가량 걸린다. 일주일 분량을 계획해 놨지만 어디 현실이 계획대로 되더란 말이냐. 정말 <모모>의 이야기에 나오는 회색빛 도시의 사람들처럼 시간에 쫓겨 사는 엄마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3월, 6학년이 되면서 무엇보다도 그렇게 아이가 할 공부에 바둥거리게 되는 나의 모습에 나도 아이도 행복하지 않았다. 작년 5학년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블로그 이웃님 중의 포스팅 중에서 눈에 띄는 문구가 있었다.


"과정은 이상을 추구하되 그 결과는 현실에 맞닿아 있다."


참 가슴을 울리는 말이다. 초등 마지막 6학년. 아이의 진학에만 목적을 두고 현재의 행복을 담보로 미래(바로 눈앞의 미래)를 위해 살고 있다 라면, 그건 아이의 미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라는 걸. 좀 더 거대한 미래를 바라보자.


“상상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다 라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해라.”


작년부터 생각날 때마다 떠올리는 문구인데 여기서 말하는 꿈이나 노력이 자칫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과도한 공부 양과 특정학교 진학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러하니까…


그렇지만, 삶은 그게 다가 아님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좀 더 진지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할 것 같다. 내 모토는 여전히 ‘평생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이고, 그러기에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한다’이다. 왜냐면 공부를 멈추고 책을 읽지 않는 삶은 정체된 삶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계획대로 영어 보케, 수학 공부 좀 안 하면 어떠랴. 꾸준히 하고 있고 즐기고 있으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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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오늘 아침 여섯 시에 문을 나섰다. 아이는 여섯 시 반에 일어나 학교 독서록과 마음장을 쓰고, 작년에 읽었던 <위키드>를 다시 읽고 싶다면서 지금 읽고 있다. 겨울부터 저번 주까지 진행했던 모닝 수학을 일단 스톱했다. 아이와 얘기를 해 보니 오후에 집중해서 수학을 해 보고 싶다고 해서 일단 일주일 동안 그렇게 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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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은 지금 위키드 음악을 들으며 위키드 책을 읽고 있다. 그래, 과정을 즐기며 살 수 있는 방법을 아이에게 제시해 주는 것. 그게 지금 엄마로서의 역할이다.



2014.03.26


Alvin's 리딩. 2014.3.17 ~ 2014.3.23. 총 10권. 우리가 하루에 한 권을 읽어도 일 년에 365권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집에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면서, 또는 도서관이나 서점에 꽂혀 있는 책들을 보면서, 정말 시간낭비 하지 않고 독서몰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앨빈은 이번 주엔 총 10권을 읽었다. <위키드> 공연을 보고 나서 다시 <위키드> 두 권을 읽었다. 길벗스쿨에서 나온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대요 1,2,3>은 오래전에 구입해 둔 시리즈인데 이제야 읽었다. 수학자 시리즈 중 <인수분해 1>을 읽었고, 웅진주니어에서 나온 우리 고전 중 <요술엽전>, 길벗스쿨의 <지구마을 길잡이 지리>, 만화책으로는 <원더풀 사이언스 우주개발>. 그리고 아주 간만에 영어책 한 권. 얇실한 Who Was 시리즈 중 <아인슈타인>.



2014.04.15


Alvin's 리딩. 2014.4.7~2014.4.13. 11권+원서 1권. 애당초 영어, 수학, 독서, 원서 읽기의 균형은 학기 중엔 불가능한 게 아닐까? 그러니 균형을 잡기 어렵다고 엄니가 고민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꾸준히’가 답이지 않을까? 물론 시기에 따라서 연령에 따라서 아이에 따라서 어디에 더 무게를 둘까는 엄니의 몫인 듯하다. 그렇다면 6학년 앨빈은???!!! 으앙…저학년이거나 중학년은 좀 답이 나오는데 예비중등 6학년은...


금욜~일욜까정 삼일동안 책 한 권 읽지 못했다. 청담 영어학원 인터넷 숙제와 수학 좀 하고 일욜엔 영화 보고 개콘 봤더니... 방법은 있다. 주말에 꼼짝하지 않고 공부하고 책 읽기. 덤으로 늦게 자기.



2014.05.02


많은 이웃님들이 오해를 하신다. '앨빈은 참 책을 잘 읽어요." 한마디로 여전히 셀프 주도적 책 읽기는 아니다. 만화책은 기꺼이 스스로 꺼내어 보지만 일반책들은 읽도록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맞는 상황이다. 그런데 분명 아이의 독서모습은 하루하루 단위의 변화를 느낄 수는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아이의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다(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딱이다). 책을 읽을 중요한 시기이고 아이도 책에 재미를 느끼는 듯 한 그때가 왔는데 시간에 쫓겨야 하니 안타깝다.


4/21~4/27 리딩트리. 만화책이 많이 보인다. 이유는 아이패드 비밀번호를 바꿨기 때문이다. 앨빈은 스마트폰이 없다. 그냥 투지폰. 집에서 아이패드 이용을 허용했더니 아예 끼고 다니면서 스포츠뉴스를 본다. 화장실에서는 주로 만화책을 보는데 아이패드를 데리고 들어 간다. 역시, 아이패드를 아무 때나 볼 수 없게 했더니 만화책이 무지 늘었다.

2014.06.24


아이가 책을 안 읽는 게 아니다. 수학하랴, 영어학원 댕기랴, 숙제하랴, 운동하랴, 나들이 가랴. 그 틈틈이 책을 보기엔 시간이 부족. 어떨 땐 이것도 저것도 엄마욕심처럼 되지 않는 거에 혼자 비분강개하며 아이에게 화풀이까지 하는 못난 어미의 모습을 ㅠㅠ


딱 한 시간이 걸릴 듯한 수학숙제가 곱빼기시간이 걸리면 계획달성 미달에 악독한 공장주처럼 아이의 작업량에 닦달까지 한다. 영어학원 댕겨 온 날은 수학을 뺄까 심히 고민 중이다.


<Why?> 책은 징하게 읽네 (출처: 아내의 블로그, 2014.6)


2. 남편(티솜리)의 덧말(2025.01.21)

일본 영화 <비 그치다>는 여운이 깊다. 영화 시작과 함께 장대비가 쏟아진다. 폭우로 길이 막힌 중년의 사무라이가 아내와 함께 허름한 여관에 묵는다.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함께 있다. 사무라이는 내기 검술로 돈을 따고,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어준다. 절대 내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기를 하고 말았다고 그는 아내에게 엎드려 사죄한다. 아내는 그에게 애절한 눈빛을 보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다. 사무라이는 산책 중에 작은 사건에 마주치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주의 눈에 들어 무술대장 자리를 얻을 기회가 온다. 그러나 내기 시합을 했던 점이 문제가 되어 무술대장 자리는 무산된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아내는 남편을 향한 깊은 이해를 갖게 된다.


"이제야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했는가가 중요합니다." – <비 그치다>, 사무라이 아내의 대사 中

목적을 위해 수단의 정당성은 무시해도 좋다는 얘기로 읽힐 수도 있다. 최근 12.3 내란 사태와 1.19 사법 폭동 사태를 일으킨 자들처럼 말이다. 나는 사무라이의 행동에서 오히려 결과의 이익이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을 보았다(부부로서의 이해와 상호 존중의 태도는 덤이다).


우리는 왜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 하는가(했는가)? 나는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지를 생각한다. 인생은 결코 결과일 수 없다. 인생은 과정이다. SNS에서 알게 된 스님은 늘 말씀하신다.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 고. 윤회 사상이 스며든 문장이기는 하지만, 나는 윤회적 관점으로서가 아니라 삶은 과정을 충실하고 정당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뜻으로 읽는다.


아내(풍뎅이)는 아이(앨빈)의 어린 시절 육아와 교육을 거의 전담하면서 늘 고민하고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잡아주었다. 자칫 과하면 부서질 수도 있기에 그 경계에서 최선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고자 애썼음이 보인다. 우리는 아이의 행복을 원한다. 그 행복이 자유방임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 노력은 힘들지만 노력하는 자신의 모습에서 발현되는 행복만큼 큰 행복도 없다. 20대 성년으로 자란 지금, 아이가 그 과정의 가치를 체득해 있는 듯하여 자랑스럽다(아내도 나도 결과보다는 과정의 삶에 방점을 두고 살아가고 있음이 우리 부부의 복인 것은 덤이다).


초6, 경인 아라뱃길의 어느 카페에서 (출처: 우리집 사진첩, 2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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