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쓰아더(엄마가 쓰고 아빠가 더하다) 2 - 앨빈의 독서나무
아이(앨빈)가 초6 시절, 아빠가 읽는 책을 꺼내어 읽었다. 아내(풍뎅이)는 아이와 같은 책을 읽게 되는 미래 시절을 그리워한다.
1. 아내(풍뎅이)의 글 (2014년 초6-2)
2014.08.21
아이가 자라면서 영어원서 리딩도 변화가 있지만 우리나라책 읽기도 많이 자랐다. 앨빈은 말이 늦은 편이었다. 4살 때쯤에서야 ‘책인가 보다’라고 여긴. 언어적으로는 좀 늦은 아이였다(직립보행은 조금 빨랐다. 11개월 때 걸었으니ㅎㅎ)
시공주니어 클래식을 저학년 때 몇 권 샀는데 시큰둥. 장식용으로 몇 년. 5학년 겨울에 비룡소클래식을 구입했다. 쥘 베른 책들 몇 권 읽었고, 남은 책들은 6학년 여름에 읽고 있다. 비룡소 24권이 <돈키호테>인데 집에 있는 다른 <돈키호테>로 읽고 싶다는 거다. 작년엔가 남편이 읽었던 <시공사의 돈키호테>. 두께가 거의 목침에 가까운 꽤 두꺼운 책에도 아이는 겁내지 않는다.
완역에 제일 가까운 시공사의 <돈키호테>. 이틀에 걸쳐서 읽었다. 725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이라 시간은 9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비룡소의 돈키호테와 살짝 비교해 보니, 그림이 일단 더 어린이스럽고, 글도 좀 더 줄여져 있다. 조만간 비룡사의 돈키호테도 다시 읽겠다고 하니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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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리딩의 변화만큼 우리나라책 읽기도 아이가 자라면서 성장한다. 저학년보다 고학년이 책 읽기에 더 중요하고, 중학교가 초등 고학년보다 더 중요하다. 타고난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이 있다. 예체능처럼, 수학머리도, 책 읽기도. 그러나 노력이 따르면 ‘어제보다는 나은 지금을, 지금보다는 나은 내일’을 만나게 된다.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비교이다.
쉽고 얇은 책, 만화책만 읽던 아이가 아빠가 읽던 책을 꺼내 읽는다. 중학생이 되면 우리 부부의 책장에 있는 책들을 읽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목욜. 방학이 끝나가고 있다. 조금씩 더디게 변하고 있지만 또다시 일 년이 지나면 아이는 폭풍성장을 할 것임을 믿는다.
… 1년 6개월이 지난 중1 겨울 방학 (2016.1.29)
펭귄 100마리를 구입한 지 꽤 된 듯하다. 4~5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집에 민음사 책은 꽤 있지만 다행히 많이 겹치지는 않는다. 펭귄이 좋냐? 민음이 좋냐?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펭귄은 주석이 뒤편에 있어서 불편한 점은 있다. 반면 민음사에 비해 펭귄 100마리에는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이 꽤 많다.
<톰소여>, <피터팬>, <크리스마스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셜록홈즈> 등. <레 미제라블>은 글쎄, 중3이상은 돼야 되지 않을까 싶은데.
대니얼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 재밌다며 정신없이 읽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읽은 적이 없네. 그 대신 로빈슨 크루소를 비틀어 쓴 미셸 트루니에의 <방드리디, 태평양의 끝>을 1월에 읽었다. 미셸 트루니에는 아이들 버전으로도 썼다고 하니 앨빈에게 권해봐야겠다.
로빈슨 크루소는 당연 서양적 시각에 백인위주의 소설일 게다.
2. 남편(티솜리)의 덧말(2025.01.23)
완역 <걸리버 여행기>를 읽어보면 알게 된다.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책은 원서와는 전혀 다른 책이라는 것을. 아마도 어린이용 ‘돈키호테’는 ‘돈키호테’가 아닐 것이다. 동명이인일 뿐이다.
문학작품 중에서 자주 인용되는 대조적 성격의 두 인물은 햄릿과 돈키호테다.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면 꼭 알아야 할 인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가 초6 때 어린이용이 아니라 성인용 완역 <돈키호테>를 읽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초등학생이 읽을만한 내용이었을까?(세부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이에게 해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초등학생이 <논어>를 읽는 것은 권장하지 않는 편이다. 성장 시기에 맞는 세심한 책 읽기 지도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아내는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우리 부부의 책장에 있는 책을 아이도 읽게 될 것으로 기대하며 설렌다(아마도 중. 고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몇 권은 읽었을 테다 ㅎ).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아이를 위해 책장을 꾸며보았다. 졸업 때까지 이 정도는 읽어보면 어떨까 하고 꾸며 본 책장. 지금은 이 형태의 책장이 우리 집에 존재하지 않지만(책은 다른 책장에 있다), 아들이 이 중에서 여러 권을 읽었구나. 그렇게 아이와 내가(아내와) 함께 세상을 공감하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