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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Jan 31. 2023

커피 한잔의 휴식

아침에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업무를 시작하기 전 커피를 한잔 하는 습관이 있다. 작은 휴식의 시간이라면 휴식의 시간이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시간은 오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인데, 전체 업무 커리큘럼을 짜기도 하고, 업무적으로 변화를 조절함과, 개인의 일정들을 체크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계획형 인간의 삶이 편안하고 평온한 나에게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가이드라인과 같은 시간에 늘 커피 한잔을 하게 된다.


커피는 기호식품인지라 사람에 따라 혹은 그날의 기분과 피로도에 따라 다양한 메뉴의 커피를 마시곤 했다. 요즘처럼 추운 겨울엔 달달한 연유라떼를 즐겨마시기도 했고, 너무 달지 않은 라떼를 먹고 싶은 날엔 바닐라 라떼를 선택했다. 그러다 아차차, 당들이 나의 살들을 덮칠 것 같을 땐 며칠간은 아메리카노를 먹기도 했다. 라떼를 먹는 날들은 회사를 출근하는 길에 사이렌오더를 해서 테이크아웃만 빠르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까지 돈을 써가면서 커피를 마셔야 하는가, 많이 맛있는 맛도 아닌데 내 돈을 이렇게 대책 없이 써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사이렌오더가 편해서 사용하지만, 사이렌 오더가 되는 매장들은 거의 대부분 프랜차이즈인지라 어쩐지 이 가격에 이 커피를 먹기엔 아쉬운 맛이다. 개인적인 생각을 첨언하자면 프랜차이즈에서 활용하는 혹은 판매하는 커피들은 커피 본연의 맛보다 유통에 초점이 맞춰진 원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커피의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여기고 있다. 고로, 1. 실제로 맛이 없거나, 2.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맛이 없거나 이겠다.








오늘은 이 애매모호한 맛을 거절해 내기 위해, 평소에 눈여겨보던 커피숍에 가서 별 기대 없이 브루잉커피를 주문했다. 아침 휴식의 시간이 더 풍성해지기 위해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날이 많으므로, 점심시간을 활용하여 회사 주변의 커피 맛집들을 탐방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변환경과 회사에 적응 중이다.) 브루잉 커피를 메인으로 하는 커피집에 가서 비교적 비싸다는 게이샤 원두를 맛보았다.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고 납품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라고 하니, 녹록지 않은 가격의 원두를 보며 살까 말까 고민하는 나를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이봐, 먹어보고 구매하라고. 커피 먹지도 않아 놓고 지금 구매부터 하겠다는 건가) 그러면서도 나는 당연히 맛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차분한 휴식의 여유조차 없어서 브루잉 되는 커피만 오매불망 기다렸다가 테이크아웃을 간신히 해서, 회사에 가서 향을 흡입하고, 적절한 온도로 식어버린 이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안도감에 감사한다. 


사실 가격만큼 이 커피를 온전히 즐겨내지 못한 것만 따지자면, 가심비는 더 좋지 않아야 한다. 1. 브루잉 커피를 "테이크아웃"하며 종이컵 냄새가 배어버리는 상황이었고, 2. 들고 나오면서 바리스타가 생각한 가장 최적의 향과 맛을 낼 수 있는 적절한 온도에 마시지 못했다. 그러면서 3. 테이크아웃으로 회사로 복귀하는 동안 흩어져버린 게이샤의 향 조각들을 온전히 가두지 못했다. 브루잉 커피를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빠가 있는 커피숍에서 바리스타가 내리는 순간부터 바라보고, 도 닦는 심정으로 물줄기를 쳐다보며, 눈으로 마시고, 향으로 마시고, 입으로 마시는 것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오늘 마신 이 커피가 좋다. 아침에 프랜차이즈에서 급히 가져온 커피보다 훨씬 더 맛있고 좋았다. 아침의 스케줄을 담당하는 강렬하고 짜릿한 진한 맛이 아닌, 천천히 내린 커피 특유의 부드럽고 향긋한 여유를 갖고 싶었을 것이다. 가만히 멍 때리며 커피를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업무에 치이고, 개인 스케줄에 치여 벅차하는 삶이 아니라, 찰나의 시간에 나를 돌아보고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글을 썼다. 


하루에 한 번. 어떻게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갖으리라. 주어진 단어에 충실히 하루를 적어내리라. 매일 적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휴식조차 허용되지 못할 앞으로의 삶들이 기대되며 걱정되고 두렵기도 하지만, 퇴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써둔 글이 없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오늘 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다짐했다. 부드럽고 힘 있는 글들을 쓰고, 임팩트가 있는 하루를 만들어내자고.







임진아 작가님의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에서 매일 제시되는 단어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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