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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Apr 05. 2023

무럭무럭 자라난 마음

사람에 대한 호의가 자라면 사랑이 되지

언제 이 사람이 내 마음에 들어왔나 싶은 순간들이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는 이 감정들이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 포근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늘 있던 일이지만, 당신의 행동들과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의 시선도 머물고, 신경 쓰이는 날들이 많아진다. 함께라고 말하기엔 너무 다수이지만, 그럼에도 함께 존재했던 시간들을 추억하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들이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닐 때, 당신에게도 나와 같은 변화가 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수면 위로 혹여 내 마음이 보일까 싶어 눌러두고 있지만, 막상 당신을 마주하고 나면 그 마음들이 마구 튀어나와 버릴걸 알아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을 꼽자면, 새로운 분야의 춤을 시작했다. 2월부터 초급, 초중급, 중급의 코스를 밟으며 발보아의 세계로 입문 중인데 굉장히 재미있고 즐겁다. 특히, 리더와 팔뤄가 온전히 안겨있는 그 커넥션이 주는 위로와 평안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잘하는 사람이 가진 리딩감이 나를 평안하게 했고, 설령 잘하지 못하더라도 음악을 듣고 같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삶을 위로했다. 세상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춤으로 증명해 내는 신기한 춤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분위기에 취해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랄까. 이 호의를, 호감을, 설렘을 키워도 될까 말까에 대한 두려움이 또 앞선다. 한 사람을 좋아하는 일로 이 즐거움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게 될까 봐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애초에 그럴 거라면 마음을 알아차린 지금 이 순간부터 시도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므로 접어야 하니까. 그럼 적어도 친구정도의 거리는 유지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숨기는 일에 능하지 않는 사람이다. 마음과 생각의 거리가 극히 짧은 사람이었다면 무척 좋았을 텐데, 이미 마음이 가는 대로 삶을 행동하고 있어서 이 두려움과 걱정이 있으면서도 행동은 생각과 정반대로 나타난다. 그 사람의 작은 호의에도 감동받고, 갑작스레 마주하면 그렇게 행복하고 좋다. 전혀 못 볼 것 같은 날, 빠에서 우연히 그를 마주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게 표면에 고스란히 드러나서 그 사람에게 되려 부담이 되었으면 어떻게 하나 생각한다. 행여 내가 다가서면 내 마음이 티가 많이 날까 싶어 다가가지도 못하고, 시크한 척, 아닌 척, 있는 척이라는 척은 다했다. 밀어내고 싶지 않은데, 밀어내게 되고, 이곳에 당신과 나뿐이에요 하고 싶은 마음도 철저히 내비치지 않으려 도망 다닌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다가오면 또 이내 히죽히죽 거리며 좋아하고 있는 나는 바보인가 싶어 웃고 있다. 헤벌쭉. 그저 당신이라 좋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아직은 시기상조니까 애써 마음을 다잡는다. 그게 꽤 오랜 기간 조금씩 당신을 봐온 건데, 왜 이렇게까지 갑작스레 불붙듯 좋아진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나는 당신과 내가 우리로서 함께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한다.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여기저기 알음알음 조언을 구한다. 당신과 친한 사람들과 더 친해지려 하고, 당신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 한다. 평판은 좋은 사람인지, 이 마음을 더 키워가도 될 것인지를 고민하며 돌다리를 두들기지만, 사실상 이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 버렸다. 매일 수시로 당신을 생각을 하고 있고, 당신이 내게 건네었던 포근했던 손길을 기억하고, 춤을 추는 동안 위로가 되었던 순간들을 기억해 낸다. 찬란하진 않았어도 평안했던 그 마음을 되새기고 있는 동안 술에 취한 듯 더없이 좋은 세상에 내가 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의 관계가 달라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가늠이 되지 않지만 꽤 차분하고 평온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싶다.

혹여, 내 마음이 톡 하고 터져 나와 당신에게 보인 호의가 부담스러워지진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차분히 마주하고자 애써 노력했지만, 그 속에 숨겨놓은 마음이 들킬까 노심초사했다. 가끔은 수업도중 너무 사적인 모습이 타인에게도 들킬까 봐 애써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당신에게서 시선을 거두기도 했다.


벚꽃 피는 계절에, 함께 꽃을 보러 갈 수는 없어도, 당신을 볼 수 있어서 좋았노라고, 내 마음이 갑작스레 커진 것 같지만 당신이 보낸 찰나의 위로들이 나를 움직였다고 언젠가 말할 날이 올 수 있을까. 계절이 가고 삶을 소중히 여기는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날이 올까. 이 마음이 그저 사랑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임진아 작가님의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에서 매일 제시되는 단어로 글을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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