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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비 Mar 29. 2023

이번이 끝나고 다음에는

내게 또 한 번의 다음 사랑이 온다면,

규정할 수 있었던 썸조차 해결되지 않은 미결의 과제로 종료를 해야 할 때, 어떻게 그 쾌쾌한 감정들을 털어낼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고 있던 일에, 그렇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할 때, 나의 다음이 존재할까를 고민하고, 나는 또다시 주저앉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어서야 할 때이다. 해야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나는 꽤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겨우 이 정도의 마음에 자리에 주저앉아 슬픔에 사무쳐있기엔 너무 아까운 인생 아니던가. 슬픔이나 분노에 잠식되지 말자.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계획해 왔던 일들을 차근차근해가자. 오늘도 또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어쨌든,

이번은 끝이 났다.


근 일주일을 무기력에 시달리듯 술만 찾았다. 술에 의지했다기보다, 사람에 의지했다고 해야 하는 게 맞다. 타인의 인정이 간절했던 일주일이었다. 나는 나 스스로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도, 또 반면에 정말 그럴까? 하는 생각들을 안 할 수는 없어서, 사람들을 찾았다. 그저 허울뿐인 위로라 할지라도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너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잖아.", "나는 그런 네가 멋있어.", "겨우 그 정도의 사람에게 널 내맡기는 건 내가 다 아쉬웠을 것 같아!" 등등 타인의 위로가 얼마나 귀한지 새삼 깨닫는 일주일이었다. 술 한잔에 즐거움을 담았고, 그래 나 꽤 괜찮은 사람이야! 속으로 재차 말하고 다듬었다. 이 정도면 30여 년 평생 정말 잘 가꾸고 잘 아름답게 만들었는데, 막상 아무에게나 내어줄 인생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역시, 사람인지라 나이가 한 해 두 해 먹어가면서 자신감이 없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삶에서 연애란 건 정말 사치에 불과했나 싶어지기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일이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연애도 결혼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이런 내가 좀 이상한 사람이려나 싶어지기도 한다. 생각은 많아지고, 현실은 내 맘처럼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또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서 안주하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이지 않나, 그럼 조금 더 도전해 보는 편이 났나 하고는 또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매일이 마음을 다잡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삶이 되어버렸다. 적어도, 아이를 낳아본 적이 없으므로, 인생의 2회 차가 시작되지는 않았으니까.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남들 해본 건 다 해보고 싶다. 꼭.


조바심을 내거나 연애를 지나치게 갈망하는 태도가 연애를 시작하기에 어려운 장애물이 되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내 가치를 온전히 내가 받아들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존재해야 누군가가 다가오기라도 할 것 같다. 내가 이런 사람이니까, 너는 나를 추앙할 수밖에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어쩌면 이 썸의 관계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끝내야 했던 건 내 부족한 인내력 때문이었을게다. 자신감이 점점 없어지는 내가 안쓰러워서, 곁에 누군가라도 두고 싶었던 거겠지. 아무 나라도 괜찮으니 일단 채워두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사랑해서라기보다, 마음이 가서라기보다, 그냥 '아무나' 빈자리만 채워주세요. 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나는 그랬겠지. 싶었다.


그러니 나의 다음은 꼭,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어 진다. 일말의 관심으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는 나지만, 간절함을 꾹꾹 눌러 담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의 크기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해야겠다. 자주자주 말해서 흔해빠진 사랑이야기가 되어 설자리를 잃어버리기보다, 매일의 마음을 눌러 담아 차곡차곡 쌓아둔 것들을 조심스레 건넬 때의 기쁨과 희열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나의 다음이 온다면 꼭, 그렇게 충분히 사랑을 하고 싶다.



임진아 작가님의 <2023 오늘을 채우는 일력>에서 매일 제시되는 단어로 글을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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