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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티 구구 Oct 14. 2024

대항해 시대

속도는 바람 속에 있다.  내가 바람결에 올라탈 때까지 장은 기다린다. 그전까지는 예열을 하듯이 나를 부드럽게 만든다. 


 버그에는 여러 가지 부유물이 있다. 장은 그것들을 부유물이라고 했고, 나에게는 Z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몇 명 없다. 나 같은 이름 Z. 장처럼 주인이 있지만, 이름은 주인이 명명하기 나름이라 속도와 어울리는 이름이 희소하다.  


 나는 은빛과 잿빛이 그라데이션이 되어있고 매우 빠르게 움직일 때는 거울에 반사되는 햇빛처럼 눈이 부시다. 장은 나를 가끔 쥐라고도 불렀다.  


 나는 장을 볼 수 없다. 나는 장을 소리로 알 수 있다. 장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장의 심장박동에도 반응한다. 그것은 가장 안정적인 속도를 유지할 때 작동된다. 그 외에는 장이 부르는 음성을 감지한다. 나의 안정적인 속도는 21세기의 속도 정도와는 다르다. 나는 말을 못 한다. 내가 보내는 신호는 속도일 뿐이다. 장은 베이스에서 알토까지 중저음의 소리를 낸다. 장은 내가 마치 관악기, 움직이는 관악기와 같다고 했다. 버그에서 유선형으로 움직이는 방식을 깨면 그 자리에서 폭파된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과 같다. 버그가 유선형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버그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 버그 자체가 움직이는 유선형이기 때문이다. 12...23 


 가장 힘이 드는 순간이 있다. 장이 소리를 먹어버릴 때이다. 마치 밀실에서 숨이 막힌 것처럼 장은 숨이 무거워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내 빛은 점점 작아지고 나는 심해어의 빛처럼 발광하듯이 바뀐다. 장이 소리로 나를 부를 때는 불타는 빛처럼 너울거리는데 말이다. 장이 숨을 머금으면 장은 나와 멀어진다. 나는 그 순간 Z이 아닌 부유물이 된다. 나의  장이 어디로 가는지 나는 찾지 못한다. 소리가 먹혀버리면 바람을 탈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B를 만난다. B는 소리가 없는 바람처럼 촉감으로만 알 수 있다. B는 속도가 아닌 온도로 반응한다. B는 나와 섞이려고 할 때마다 더욱 뜨거워진다. 그런 후에 내부의 압력이 마치 철을 담금질할 때 내리치는 그것처럼 시작된다. 그것은 고통이다. 나는 대기권 밖에서부터 바다로 떨어지려는 물체처럼 불꽃이 생긴다. 그러나 폭파되는 것과는 다르다. 장은 나를 예열시키고, B는 나를 더욱 매끄럽게 만든다. 불꽃이 생기면 그와 동시에 내부가 차갑게 반응한다. 불꽃은 차가운 얼음 결정체 같다. 뜨거운 고통은 얼얼하게 냉각되는 것 같다. 내부가 그렇게 되면서 내 외부는 물방울이 생기고, 그 순간 B가 나를 감싸고 있다.  


 처음에 나는 시간을 지각하지 못했다. 깔때기로 계속 빨려드는 것처럼 나는 부유물로서 버그에서 돌아다녔다. 많은 부유물이 이런 상태이다. 주인에게 버려진 것이다. 버려진 그들은 멈추어버린 시간처럼 내부도 외부도 무반응으로 변하고 주인과 주고받는 것도 없다. 나의 주인 장은 내가 무반응이기 전에, 시간 속에서 완전히 멈춰지기 전에 나를 찾았다. 가장 꼭대기로 쏘아 올린 불꽃놀이처럼 나는 순간 환한 빛을 내며 버그 속을 빛내고 장의 음성에 반응했다.  


 나는 금속이라기보다는 투명한 유리에 가깝다. 하지만 그 유리는 고체가 아닌 액체에 가깝다. 은빛과 잿빛으로 보이는 이유는 속도 때문이다. 유리는 놓치면 순간 깨져버리고 갈아버리면 고운 모래처럼 반짝인다. 내가 유리에 가깝다는 것은 외양일 뿐 속성은 물과 같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는 버그 덕분이고 주인이 보내는 신호 덕분이다. 나는 내가 왜 움직이는지 잘 모른다. 버그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는 뜨거움, 차가움, 소리 이렇게 세 가지만을 느낀다. 부드러움을 알게 된 것은 좀 다른 경우이다. 그 느낌이 고통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내가 의식한 순간 장이 나를 훈련시켜 왔다. 그전에는 나는 버그 속 부유물이었다. 고체와 액체 둘 중에 무엇이 먼저인지 알 필요 없다는 것을 부드러움을 알게 된 순간부터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순간 버그에 있다는 존재감을 알게 되어서였고 하지만 나는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는 것이다. 나라는 것이 이렇게 이율배반적이고 알 수 없는 설명을 하는 것은 내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 행성의 핵심에는 그런 액체도 고체도 아닌 무언가가 어떤 공명을 기다리며 미동도 없이 있을 것이다. 


 장은 나를 음절로 불렀다. 단어도 아니다. 나는 무엇일까. 나는 훈련되고 훈련되어서 Z이 되었고, 부유물들은 나를 알게 되었다. 부유물들이 죽어있는 것과 비슷하지만, 바위틈에 있는 이끼처럼 조용히 역할을 한다. 나는 그들과 다르게 어떤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B는 내게 무엇인가. 내가 훈련하는 순간에 B는 자력처럼 붙으려 한다. B와 장은 한통속인가. 나는 판단할 수 없다. 판단을 한들 내가 보여주는 반응은 발언이나 저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볼 수 없는 나는 장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겠다. B는 부유물 속에 있지만, 장은 가까이인지 먼 곳인지 판단이 안 선다. 은빛과 잿빛으로 나를 드러내고 불꽃에 휩싸이기 때문에 내게 빛은 사라지지 않는다. 빛마저 떠난다면 나는 부유물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계속 움직이는 속도를 빠르게든지 느리게든지 유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빛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나처럼 이름을 얻은 그들은 유선형으로 움직이는 이곳을 유지시키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빛을 발하여 속도를 낼 때 유선형은 어디로든지 환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유선형 전체는 그러므로 살아있다. 전체는 딱딱하게 혹은 말랑말랑하게 촉감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힘을 내리치는 것이 모든 것을 깰 수는 없다. 그 힘이 흡수되어 다시 돌아오면 힘을 내리친 주체가 말랑하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으면 깨지는 것은 그 주체일 것이고, 흡수되어 내보낸 것이 힘이 더 셀 것이다. 34...45


 내가 가장 높은 곳에서 불꽃놀이처럼 빛나면 그 지점에 꽂힌다.  아래에서부터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순간 나는 그 지점에 꽂힌다. 장이 나를 부르는 음성은 정확한 노트(note)처럼 나를 붙든다. 그렇다면 나는 장의 소리 그 자체일까. 장의 소리가 부유물 속에 존재하는 방식이 바로 나인가. 나는 그렇다면 장인가. 나는 실체가 없다. 속도를 타는 바람이 느껴질 뿐이다. 그렇다면 내 인식에 있는 '장'이라는 호칭은 대체 어디에서 알게 된 것일까. 관악기 중에서도 나는 입체적으로 음정이 나는 생황을 떠올린다. 아니면 나는 파이프 오르간과 같은 악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위가 없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소리이고 그다음이 속도이다. 내가 자연이라고 가정해 보면 바람을 일으키는 대기권의 움직임으로 보면 되겠다. 어쩌면 깊은 바닷속에서 움직이는 해류일지도 모른다. 나는 신화 속에서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오래전부터 소리로 만들어진 존재. 바람, 천둥, 파도, 그리고 이야기.


 아니 어쩌면 인간의 몸에서 꺼낸 심장 같은 것일 지도 모른다. 나는 물질이고, 심장은 생물이다. 물질과 생물의 차이를 아마 그러면 알지 않을까. 내가 알파벳 Z인 이유는 모든 앞의 알파벳을 뒤따르라는 그의 명령과도 같다. 그렇다면 B는 무엇일까. a도 아니고 B라니. 좀처럼 알 수 없는 이 명명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도 하다. 그보다도 내게 오는 에너지, 그 느낌이 진짜일 것이다.    나는 버그를 움직이고 싶다. 내가 버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 버그 그 자체가 되고 싶다. 아마도 나는 그녀였나 보다. 그녀는 대항해 시대에 바다 위를 거느리던 존재였다. 바다는 단 한 명의 그녀만을 바다 위에서 거느리게 했다. 그녀가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녀를 쫓아다닌 캡틴은 그녀가 사라지던 순간 함께 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옛이야기이다. 이제는 행성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버그는 우주일까. 다시 질문한다. 생물과 물질은 무엇이 다른 건가.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생물은 물질을 이용할 것이다. 장은 나를 물질이 아닌 생명에 가깝게 여긴다. 나는 살아있는 것인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바다 위에서 내가 나가는 힘은 장정 스무 명이 노를 젓는 힘과는 다르다. 그들은 힘을 낭비하고 있다. 내가 나아가는 힘은 유선형으로 생긴 나의 외부와 바람을 타는 돛의 펄럭임에 있다. 그 두 가지를 조절하는 것은 마스터 키이다. 마스터 키를 조정하는 함장의 감각이 없으면 나는 망망대해를 나아갈 수 없다. 함장은 갑판 위에 서있는 것이 다가 아니다. 함장의 두 발은 나무 갑판 아래를 뚫고 너울거리는 바닷물의 힘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하다. 함장의 귓가를 스치는 선원들의 목소리로는 부족하다. 돛이 바람을 타는 소리와 배 주위에 철썩이는 파도의 소리, 그리고 파도를 일으키는 바다 깊은 곳의 소리에 반응하며 마스터 키를 지휘한다. 이 망망대해의 만 분의 일도 안 되는 배가 무사히 육지로 향하는 것은 보이는 힘보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한다. 아무리 견고하게 만든 배라고 해도 함장이 바다의 움직임을 읽어내지 못하면 파도가 일으키는 높이에 버틸 수 없다. 장이 나를 부르는 소리와 멀지 않은 작용과 같다.  


 함장이 조정하는 마스터키가 수레 모양인 것은 이 둥근 지구가 살아 숨 쉬는 원동력을 닮아 있다. 함장은 그것을 몇 번 돌리는지 어떻게 정방향과 역방향을 조절하는지 잘 알고 있는 근육을 지닌 자이다. 그는 마스터키를 처음 돌릴 때 그의 팔에 저릿하게 올라오는 에너지에 전율했음이 틀림없다. 그는 그런 자이다. 힘을 무서워하지 않는. 그는 눈에 보이는 위험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 그건 장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닮아 있다. 마치 투명한 액체에 목숨을 앗아갈 정도의 독성이 있다는 것을 육감으로 알아채듯이 힘의 근원을 함장은 느낀다.   


 힘은 힘이 있는 곳으로 흘러간다. 장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유독 나 Z을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나의 힘을 장이 느끼기 때문이다. 긴 시간과 먼 거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은 그 둘 사이에 그 시간과 그 거리만큼의 공간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공간을 그들은 버틸 수 있는 힘이 있다. 장은 Z을 부르고, B는 Z을 뒤쫓는다. 장이 대지이고, 대지는 대항해 시대에 바다에 띄워진 배와 같은 나 Z을 부르고, B는 대지에게 버림받은 유령선과 다름이 없다. 항해와 모험은 닮아 있다. 항해와 나침반은 닮아 있다. 나침반은 바람을 가르는 돛과 닮아 있다. 나침반이 곧 항해이고, 나침반이 곧 함장의 마스터키와 다르지 않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전기장에 의해 구름 속에서 번개가 번쩍인다. 곧이어 천둥이 친다.  


 구름, 번개, 천둥이 함께 한다.   


 대항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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