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해가 기울면서 창문으로 길게 비친다. 특히나 10월 햇빛은 눈에 넣어도 부시지 않게 알맞게 익어있다. 그렇게 10월 한 달 동안 나는 커피숍 창문 너머를 쳐다본다. 아직도 거기에 카우보이가 앉아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며 말이다.
만약 지금의 나라면 그를 방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모자도 쓰지 않았고, 부츠도 신지 않았지만 그는 카우보이였다. 자신만의 공간을 가진 카우보이. 그때는 그러니까 내가 말을 걸었을 때 난 업타운 걸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잘 몰랐던 그 시절, 충분히 내가 그를 맞춰주며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아니 내가 뿌린 향수 때문에, 말이 없어도 그가 편하게 앉아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머그잔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다가 조금 식은 다음에 마셨다. 뜨거운 커피잔을 쥐고 있는 그의 손가락은 손톱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는 오직 커피만 마셨다. 그의 자리에는 긴 탁자가 있고, 스탠딩 좌석이었다. 그는 허리가 긴 편이라서 비스듬히 서 있는 폼이 아주 유연해 보였다. 탁자가 좀 낮아 보일 정도로 키가 큰 그는 항상 탁자 위에 길게 난 창문 바깥을 한참 응시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커피가 식었을 때 마시고 금방 나갔다.
나이가 몇 살 즈음이었는지 헷갈리는데, 왜냐하면 서른 안팎으로 보였지만 입고 있는 옷 스타일이 더 어려 보였고, 목소리를 도통 들어보지 못해서였다. 어떤 목소리일까 궁금해서 못 참게 되었던 어느 날 그가 커피를 주문하는 걸 들었다. 목소리는 적당히 낮음 음성에 조금 천천히 말해서 여유가 있었다.
내가 말을 걸기 전에 나는 아주 많이 고민했다. 저 사람은 여기에서 무언가를 추억하고 있어. 내가 말을 건다면 그 추억의 공간을 깨뜨리는 거야. 나서지 말자. 나서지 말자… 하지만 이렇게 고민을 하는 노력만큼 인사를 해보자는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나는 나를 잘 몰랐다. 내가 얼마나 중구난방으로 대화를 하는지 말이다. 바보같이. 그리고 말을 걸었던 그날, 나는 스트레이트 진 위에 셔츠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고 가벼운 차림으로 커피숍에 갔다. 그가 항상 서 있는 스탠딩 좌석을 넌지시 쳐다보는 의자에 앉아서 숫자를 세며 숨을 쉬었다. 스니커즈 안에 있는 내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가 커피를 가지고 그 자리에 갔을 때 의자에서 끼익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몇 걸음을 떼는 동안 내 시야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긴장한 나였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갈수록 하고 싶은 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내가 바로 옆에 섰는데 못 알아챘다.
“저랑 합석하실래요?”
그 사람보다 더 놀란 건 나였다. 그는 그냥 나를 쳐다보고는 손을 설레설레 흔들고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나는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
“ 버스 정류장을 쳐다본다고 해결되지는 않아요.”
이번에 그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한참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의 눈동자와 내 눈동자는 마주쳤다기보다 반사되었다. 그 사람의 눈동자가 점점 반짝였다. 물기가 비친 눈동자에 내가 보였다. 그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누군가를 보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 것 같이 나는 진공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났다. 아무도 없는 탁자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보았을 때는 이미 그가 사라진 후였다.
10월에는 항상 그 사람이 서 있을 거 같은 커피숍의 창문을 바라본다. 더 이상 그 커피숍에 들어가 보지 않지만, 난 이렇게 생각한다. 그 사람이 지금 여기 버스 정류장을 쳐다보고 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