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유로의 행복
포르투갈에 이렇게 오래 있는데 수도는 가봐야 할 것 같아서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버스 타고 왔다. 3시간이 좀 넘게 걸리더라. 리스본-포르투 간 버스는 많아서 5유로면 이동 가능하다.
아침에 포르투 알베르게 숙소를 빠져나올 때, 길에서 순례지들을 마주쳤다. 부엔까미노라고 인사했더니 부엔까미노로 화답해 주었다. 순례길을 끝낸 기분이 이상했다. 더 이상 20km를 매일 걷지 않아도 된다니. 숙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건 좋다.
리스본행 버스터미널은 숙소에서 걸어서 1시간이 넘었다. 어차피 오후 1시 30분 차라 여유로웠다. 이미 3일 동안 걸어 다녀서 익숙한 숙소 주변 골목을 돌아다녔다. 에그타르트를 먹고 납작 복숭아도 1kg에 1유로대로 엄청 싸게 팔길래 구매했다.
어제는 루이스 다리 너머에 테일러에서 와이너리 투어도 했다.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어서 이해하기가 편했다. 포르투에 일주일 뒤에 다시 돌아가면 아예 포도농장에 가는 투어를 신청했다. 내일도 신트라 한국어 투어를 예약했다. 포르투갈 여행에 큰 돈을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순례길 걸으며 여행경비를 아낀 덕분이다.
에그타르트, 납작 복숭아, 포트와인. 사실 이미 포르투갈 여행 목적을 모두 달성했다. 하지만 6월 8일과 10일이 포르투갈의 중요한 국경일이라 그때는 무조건 포르투갈에 있고 싶더라. 그래서 당분간 포르투갈에서 체류한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숙소까지 걸어서 1시간 반이 걸렸다. 이제 이 정도 거리는 걸을 만하다. 다만 체크인을 오후 7시까지만 할 수 있어서 부담됐다. 그래서 종종걸음으로 서둘러 갔다. 점점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언덕배기를 만났다. 길의 경사를 몰라서 걸을 수 있었다. 경사가 완전 프리미티보길을 연상케 했다.
무사히 6시 40분에 숙소에 도착했다. 직원이 없어서 초조했다. 메시지 보내고 한 5분 있다가 직원이 올라왔다. 1층에서 나를 기다렸단다. 나를 못 봤단다. 난 배낭이 무거워서 얼른 숙소에 내려놓고 싶어서 허둥지둥 올라왔다고 했다.
친절한 대만인 친구가 말을 건다. 까미노 걸었냐고 묻는다. 딱 봐도 까미노 걷게 생겼나 보다. 여기도 순례자가 있구나 반가웠다. 그녀는 프랑스길을 처음 걸었다더라. 대만여행을 3번 가고 한 달간 살았던 적도 있어서 대만인을 만나 반갑다.
친구랑 까미노 이야기를 했다. 거의 군대 갔다 와서 군대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프랑스길에 순례자가 많아서 숙소 구하기가 어렵다는 소문을 많이 들었다. 그녀는 실제론 그렇지 않다고 언제나 잘 곳을 예약 없이도 구했다고 한다. 물론 보통의 숙소 체크인 시간인 오후 2-3시 전엔 거의 마을에 도착했으니 그럴 법 하다.
숙소에 자리가 없다고 소문이 나는 이유 2가지를 알려줬다. 첫 번째로 예약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렇다. 근데 숙소에서 침대가 20개 있으면 10개만 예약사이트에 올려놓아서 자리가 언제나 있다고 한다. 둘째로 예약을 마을마다 하나씩 연달아해 두어 세 곳이나 예약해 두고 취소를 안 한다고. 그래서 실제론 매일 빈 침대를 봤다고 한다.
정교한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숙소마다 가지각색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노쇼족을 막을 방법이 필요한 때다. 누군가는 숙소에 자리가 없어서 성당 땅바닥에서 자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프랑스길에서도 그런 일을 당한 사람들이 있었단다.
리스본 첫날인데 심한 언덕 경사에 땀을 쫙 뺐다. 샤워하고 밖에 안 나갔다. 여긴 침대가 20개 가까이 되는데 샤워기 하나 변기 하나다. 20유로짜리 숙소가 이 정도라니. 순례길 공립 알베르게가 그리워진다. 그래도 다들 심성 착한 친구들이 묵어서 다행이다. 까미노처럼 여행정보를 공유하며 자기가 쓴 교통카드도 내어주며 자기 일처럼 도와주더라.
오늘 내 침대는 2층이다. 같은 숙소에 인도인 여자애가 서른일곱인데 남자친구한테 인스타그램으로 방금 이별을 당했다. 그저 아디오스라고 메시지 보내고 차단당했다고 한다. 1년 동안 전화로만 연락하다가 헤어졌단다. 아주 훌쩍훌쩍 울고 있다. 1층 원래 침대 주인인 베네수엘라 남자애가 진심으로 위로해 준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내가 이별한 기분이다.
인도인 여자애가 까미노에서 만난 프랑스인 친구가 자기 파리 집을 공짜로 빌려준다고 한다. 그녀는 까미노를 걷고 있어서 집이 비니까 말이다. 며칠 같이 걸었다고 본인 보금자리를 내어주다니 대단한 친구다. 그래서 내일 파리를 갑자기 간단다. 근데 주변 친구들한테 파리 가자고 꼬신다. 까미노 친구가 모르는 사람들까지 집에 들이는 건 반기지 않을 것 같은데. 호호호.
난 내일 가이드투어에 가서 그냥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저렴하게 숙소에서 묵으려고 리스본에서는 매일 집을 옮긴다. 피치 못하게 짐을 이고 다니는 신세이지만 아무렴 어떠리.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힘껏 즐겨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