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엔 낍, 점심엔 바트, 저녁엔 동
매월 말일이 되면 다음 국가로 이동하는 삶.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 가는 택시를 탔다. 비엔티안에서는 로카라는 택시앱을 사용한다. 툭툭 흥정이 싫어서 그동안 열심히 걸어 다녔는데 택시앱이 있으니 세상 편하다.
비엔티안 숙소에서 냈던 보증금을 체크아웃하고 다시 돌려받았다. 택시비를 내고 나니 돈이 좀 남는다. 공항에서 과자 하나를 계산하고 8천 낍을 거슬러받았다. 면세점 직원이 지폐 중에 깨끗한 낍 세 장(5천 낍 한 장, 2천 낍 한 장, 1천 낍 한 장)을 골라서 나에게 주었다. 감동이었다. 라오스를 곧 떠나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니 기념품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깨끗한 지폐를 꺼내 준 것이다.
공항은 비싼 물건만 팔고, 500원 정도의 금액이라 살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기부함이 있길래 기부했다. 쓰지 못하는 돈을 가지고 있는 게 오히려 마음의 짐이 된다. 하지만 면세점 직원이 내게 보여준 배려는 오래 남을 것이다.
비엔티안 왓타이 공항에서 방콕 돈므앙공항으로 넘어왔다. 다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선 방콕 수완나품공항으로 가야 했다. 무료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태국 관광청에서 가이드북 다운로드하면 가방을 준다는 거다. 환승시간이 5시간이나 남아서 천천히 가이드북을 받고 공짜가방도 챙겼다. 태국 가이드북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동안 열심히 카메라로 촬영하더라. 어쩌면 가방은 관광객 1을 연기한 대가가 아니었을까.
이제 어엿한 태국 방문 네 번째. 돈므앙공항도 수완나품공항도 익숙해졌다. 1월에 태국에서 살아서 바트도 있었기 때문에 뭔가 로컬 아닌 로컬 같았다. 수속을 다 마치고 1시간이 남아서 본촌치킨에서 치킨+순두부 세트를 먹었다. 지난 추석에 부모님과 태국을 여행했다. 부모님이랑 똑같은 자리에서 맛있게 먹었던 추억이 생각났다.
항공편은 에어아시아와 비엣젯을 이용했다. 둘 다 수화물 초과하면 요금을 부과하기로 악명 높은 저가항공사이다. 나는 배낭여행객으로 기내수화물 7kg에 모든 것을 다 담고 싶었다. 그게 사실상 가장 비용이 저렴하니까. 이동하다 보니 계속 짐이 늘어나서 무게를 초과해서 비용을 내야 할까 봐 걱정됐다. 처음으로 먼저 수화물 추가했더니 마음이 편했다. 앞으로는 짐을 줄이던지 돈을 더 벌던지 해야겠다.
사실 7kg에 모든 짐을 넣는 과정은 눈물겹다. 나는 맥시멀리스트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배낭에는 가벼운 옷만 넣고 무게가 나가는 건 주머니가 10개가 넘는 조끼에 담는다. 울룩불룩 앞뒤로 이것저것 쑤셔 넣었기 때문에 방탄조끼가 된다. 거기다 바람막이를 또 입는다. 바람막이에도 주머니가 2개 있다. 새끼 캥거루를 품은 엄마 캥거루가 된 기분이다. 아마 6kg는 족히 담겨있지 않을까 싶다. 아침에 8.4kg였던 배낭이 조끼 안에 짐을 옮겨담자 11.4kg이 된 걸 보면 말이다.
다낭에 도착해서 수화물을 기다리는 게 어색했다. 그동안 짐을 안 부쳤기 때문에, 수속이 끝나면 바로 공항을 떠났다. 짐이 많으면 챙겨할 게 하나 더 느는구나. 배낭을 찾고, 공항을 나와서 두리번거렸다. 트래블월렛카드의 출금수수료 무료인 은행의 ATM이 보이지 않았다.
환전소등이 줄줄이 늘어서만 있을 뿐이었다. 환전소 직원들이 처음 본 사이인데 너무 살갑게 들어오라고 호객행위를 하는데 무서웠다. 아마도 그들의 MBTI는 다 E겠지? 혹시나 입국층에 가면 내가 찾는 ATM이 있지 않을까 해서 봤는데 없더라. 블로그에서 다시 한번 찾아보고 없는 것을 확인했다. 이미 공항 환전을 경험해 본 후기를 읽고 용기를 얻어, 환전소를 당당하게 걸어갔다.
태국 바트밖에 현금이 없어서 제일 잘 쳐주는 데로 하나씩 물어보고 다녔다. 출구에서 가까운 쪽부터 차례대로 4곳을 물어봤는데, 마지막이 제일 비싸게 쳐줬다. 그래서 다음 1곳만 더 물어보고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그런 나에게 건넨 여직원의 회심의 한마디. “날 믿어, 여기가 제일 태국 바트 잘 쳐줘.” 신뢰가 갔다. 다른 데는 알아보고 온다고 하면 그냥 보내주었다. 사실 내게 필요한 것은 그저 확신이었는 지도 모르겠다. 무거운 짐가방 들고 하루종일 이동하고, 환전까지 이리저리 알아보는 것이 지쳐서 얼른 집에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어 바로 동으로 환전했다.
숙소에 갈 택시비가 생겼으니, 택시 앱을 켠다. 베트남은 그랩을 쓴다. 그랩을 부르는 장소에 가니, 흥정택시 기사님들이 친한 척을 한다. 흥정 조율에 능숙하지 못한 나는 무조건 정해진 금액에 가려 한다. 그랩이 있어 흥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사히 그랩을 탔다. 숙소까지는 20분 거리. 오토바이 천국답게, 길거리엔 오토바이가 정말 많았다.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오토바이가 내가 탄 차 옆구리를 박고 넘어졌다. 다행히 차는 튼튼해서 조금 자국이 남은 정도였는데. 기사님이 잠깐 나가서 상황 확인하고 바로 종료되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여자애였는데, 사고가 났는데도 반응이 태연해서 신기했다. 오히려 오자마자 교통사고 나는 걸 본 내가 더 쫄았다. 숙소에 와서 검색해 보니 이런 오토바이 사고가 흔한가 보다. 교통사고 사례가 쉽지 찾아지는 걸 보면. 다낭은 특히 더 조심해야겠다 싶었다. 여행하면서 무엇보다 제일은 안전이라.
아침엔 낍, 점심엔 바트, 저녁엔 동. 오늘 하루의 요약이다. 낍을 모두 털어냈다. 바트도 대부분 동으로 바꿨다. 이제 동으로 살아가야겠지. 일단 무사히 새로운 집에 도착해서 다행이다. 짐을 풀고 이곳에 장점과 단점 파악도 끝났다.
라오스에선 유료 세탁서비스를 이용해야 해서 빨래를 마음껏 못 했다. 그래서 새로운 숙소엔 방에 세탁기가 있는 곳을 골랐다. 신나서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리는 중이다. 여긴 근데 지난 숙소에 있던 헤어드라이기가 없다. 점점 숙소를 고르는 조건이 늘어간다. 부족한 환경도 얼른 적응해 버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