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할머니를 기억하는 방법
"춥다, 추워" 코끝마저 시리고 입김이 절로 나온다. 야속한 한국의 겨울 날씨가 진분홍색 유니클로 털 후리스에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하늘색 수면 바지를 입고 단단히 수면양말까지 신은 할머니를 생생하게 떠오르게 한다.
나를 낳아준 것은 엄마였지만, 먹이고 키운 것은 할머니였다. 부모님이 맞벌이하셨고, 특히나 내 룸메이트였기 때문에 눈을 떠서부터 감을 때까지 할머니와 온종일 함께였다. 비록 할머니가 열심히 내 책상을 치워주시면, 맨날 그 물건 어디 갔냐고 되레 화를 내던 심술궂은 손녀였지만.
할머니는 손수레를 "구루마"로, 양파를 "다마네기"로, 손톱깎이를 "쓰메끼리"로 부르셨다. 그리고 일본어로 일부터 열까지 숫자 자세는 법을 알려주셨다. 중학교 일본어 수업 시절, 내가 재밌게 일본어를 배울 수 있던 것은 그녀의 조기교육 덕분이리라. 그렇게 본인이 초등학교 시절 공부하신 것을 80년 넘게 생생히 기억하셨다.
소파에 누워 초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 노래를 즐겨 부르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흔이 넘도록 치매가 없는 것을 스스로 자랑스러워하셨다. 나도 그런 세상에 서 제일 당당한 그녀를 “황 박사”라 부르며 좋아했다. 또렷하게 배운 것을 기억하고 설명하시는 모습이 박사님 같지 않은가.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라는 말과 아낌없이 볼 뽀뽀를 날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할머니와 중앙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는 시간이 유년 시절에서 가장 행복했다. 매일 물건 사는 곳이 정해져 있었고, 도장 깨기를 하듯 구루마를 끌고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를 따라다니면, 생닭 한 마리를 사는데도 닭똥집이 아낌없이 얹어졌고 콩 나물 천 원어치에도 검정 비닐봉지 가득하게 담겼다. (단, 꼭 현금으로 사야 함)
매번 장보기의 마무리는 순대와 떡볶이 포장이었다. 할머니는 가족들이 차례대로 집에 돌아올 때마다 순대와 떡볶이를 내어주셨다. 그게 우리 가족이 누릴 수 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할머니는 생전 본 적 없는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해주셨다. 매번 똑같은 이야기여서 거의 눈감고도 외울 정도였다. “너희 증조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때, 지리산에서 유일하게 구역의 경계를 구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어.”
할머니는 내 어릴 적 단 한 번의 선행도 자주 언급하셨다. “민주는 한 살 터울밖에 안 되는 자기 동생을 살뜰히도 챙기 더라. 운동화 신발 끈도 단단히 묶어주고, 번쩍번쩍 업어주고.” 아빠도 가끔 취하시고 똑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할머니의 이야기를 아빠도 반복적으로 들으셨음에 틀림없다.
아마도 나의 마케터에 최적화된 성격은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름지기 주변 사람들에게 작은 것도 큰 의미를 담아 말하고, 꾸준히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 핵심.
시간이 흐를수록, 할머니에게 받는 것보다 해드릴 수 있는 게 많아서 기뻤다. 할머니의 매일 드시는 알약 개수가 늘어나는 것은 슬펐지만. 이따금 본인이 자식들보다 오래 사는 것에 크게 한탄스러워하시면서 혼자 약을 끊으셨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의 건강은 조금씩 위태로워졌다.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를 굳건히 지켜주셨기에, 백 살이 넘도록 평생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어렸을 때, 할머니의 형제들이 다 단명해서, 그들 몫까지 더해 오래 산다고 종종 말씀하셨 던 터였다. 항상 본인의 정정함을 우리에게 각인시켜주셨다.
작년 설날이 오기 직전, 할머니는 어느 가족 한 명에게 작별 인사 할 시간도 없이 바삐 떠나셨다. 큰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동안 다 같이 모인 적 없던 명절인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한데 모이게 된 사실이 퍽 슬펐다. 가족들끼리 사이좋게 오순도순 지내는 것을 항상 바라셨는데.
그렇다, 오늘은 할머니 첫 번째 기일이다. 근데 그걸 알면 서도 나는 한국을 떠나 태국 치앙마이에 왔다. 할머니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데도, 결국 내가 먼저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내게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했다. 미뤄왔던 퇴사를 하고, 독립적인 나만의 삶을 시작하려 한다. 더 이상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
할머니는 일기장을 남겨주셨다. 일기장만 펴면, 눈물이 멈출 줄을 몰라서 시골집에 꼭꼭 숨겨놨지만. 할머니의 일기를 읽는 대신 꾸준히 에세이를 쓸 것이다.
특별한 일이 있든 없든 매일 그날의 일을 빠짐없이 기록했던 할머니처럼. 종종 특별한 용건 없이 잘 있냐고 꼭 물어보던 할머니의 따뜻한 안부 전화 한 통처럼. 그러다 보면 할머니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