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위한 대장정
태국 치앙마이, 라오스 방비엥, 베트남 다낭. 동남아 3개국 한 달 살기 여행이 끝났다. 이제는 유럽으로 떠날 시간. 2015년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독일에서 1년 동안 살면서 유럽여행을 꽤 했다. 유럽을 여행한 지도 벌써 8년이 되었다니 시간이 참 빠르다. 스물두 살 일 때는 무서워서, 시간이 부족해서 못 갔던 나라를 골라서 짧게는 며칠 길게는 한 달씩 여행할 예정이다.
유럽여행의 첫 시작 나라는 그리스. 오늘 아침에 베트남 다낭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정은 시작됐다. 점심에 말레이시아 쿠알룸푸르를 거쳐 저녁에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빠니보틀이 지구마블 프로그램에서 10달러로 하루 버티기를 위해 노숙했던 바로 그곳이다. 나도 새벽 5시 비행기라 공항에 머물고 있다.
새벽 비행기가 많은지 다들 자기만의 자리를 잡고 누워있거나, 핸드폰 충전하며 노트북 하고 있다. 해가 저문 저녁에 도착해서 그런지, 메카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기도하고 있는 이슬람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찾아보니, 하루에 다섯 번 (해뜨기 전, 정오, 해 지기 전, 해가 진 후, 자기 전), 몸을 깨끗이 하고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고 한다.
오랜만에 온 싱가포르는 대단히 현대적으로 느껴졌다. 사실 초등학교 5학년때 가족여행으로 왔던 게 마지막이니 완전히 새롭다고 봐야겠지. 어렸을 땐 싱가포르가 크게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부산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도시국가라고 한다. "쥬얼 창이"라고 공항에 붙어있는 쇼핑몰인데, 대규모 폭포가 유명하다. 그걸 보고 싶어서 공항을 나갔다. (이미 말레이시아에서 그리스 가는 티켓까지 받아서 공항을 나가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래도 온라인사이트에서 입국신고서 작성만 하면 우리나라처럼 자동출입국심사라 편하다.
폭포가 엄청 크고 컬러풀하게 시시각각 변해서 입이 떡 벌어졌다. 부산 롯데백화점 광복에 가면 이런 인공 폭포가 있는데, 그것보다 한 5배 큰 규모랄까. 폭포에 대한 감탄도 잠시 뿐. 역시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배고파서 맥도널드에 갔다. 역시 뭘 먹을지 잘 모르겠을 땐 맥도널드. 다들 나랑 같은 생각인지 맥도널드에 사람이 많았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는데, 카드 결제가 되지 않아서 당황했다. 계산대에서 다시 주문하니, 싱가포르달러만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당연히 공항 근처에 있어서 미국 달러로 계산이 되겠지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트래블월렛에 싱가포르달러를 바로 충전했다. 50달러부터 충전 가능하지만 환율 좋을 때 다시 팔아보자 위안 삼아 본다.
빅맥 라지세트를 먹었다. 빅맥지수를 알아보기 위한 것은 아니고, 가장 만만한 메뉴랄까. 먹을 식당 선택, 메뉴 선택이 어려울 땐 대표식당 대표메뉴를 먹는 편이다.이고 다니는 짐이 많아서 빠른 결정이 필요했다. 빅맥이 생각보다 작아서 이름을 스몰맥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혼자 생각했다. 먹다 보니 배부르긴 하더라.
맥도널드가 폭포가 떨어지는 지하층에 있어서 지상이랑은 색다른 분위기를 냈다. 뭔가 멋진 폭포의 뒷모습 같달까. 그마저도 밤 10시까지만 운영돼서 조금 늦장 부렸으면 폭포를 못 볼 뻔했다.
엄마랑 영상통화를 연결해서 싱가포르에 왔다고 전했다. 맥도널드 결제에 난관을 이야기하다가, 옛날에 가족여행 왔을 때도 똑같이 맥도널드에서 난감했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길거리 맥도널드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가족 수대로 주문했는데, 싱가포르달러만 받던 일이었다. 우린 패키지여행자라 미국 달러가 많아서 당연히 달러로 결제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조금의 싱가포르달러가 있어서 돈을 못 내는 난감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아찔했던 기억이다. 얼마나 아찔했는지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는데도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때 여행은 3가지만 기억에 남았다. 바로 머라이언상과 맥도널드, 그리고 주롱 새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친 프로모션 마일로 트럭이다. 쨍쨍한 햇볕에 대단히 목마른 순간.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마일로 트럭이 나타났다. 시원한 마일로를 공짜로 마실 수 있었던 경험은 그 이후로 마일로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그 이후로 직접 내 돈으로 마일로를 다시 사 먹은 적은 없지만.
밤 11시가 가까워지자, 맥도널드가 닫으려는지 직원이 청소를 시작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공항으로 들어왔다. 창이공항에는 라운지가 5개 정도 있는데, 3시간 이용권을 클룩 같은 데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라운지를 가볼까 하다가 이미 배도 부르고 전기 충전할 곳도 앉을 의자도 충분해서 굳이 가지 않았다. 라운지에 가면 샤워시설이 있어서 샤워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비용을 더 내야 한다.)
창이공항을 좀 공부해서 창이공항에 대해 글을 써볼까 했는데, 짧은 시간에 한계를 느끼고 오늘의 여정을 풀어봤다. 조금 저렴하게 이동하고 싶어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세 번이나 타고 목적지로 가는데, 상당히 피로하다. 내 가방이 7kg면 조금은 덜 마음 졸이면서 다닐 텐데, 10kg라서 긴장 속에 다녀서 더욱 그렇다. 다행히 수화물 오버차지를 잘 피했다. 아직은 이렇게 고생하며 가볼 수 있는 패기에 나 혼자 박수를 보낸다.
그리스 아테네를 택한 이유는 비행기티켓을 검색하다가 유럽 가는 비행 편 중에 그나마 저렴해서였다. 물론 이미 가본 나라가 아닌 한 번도 가보지 않는 나라가 기준이었다.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은 열심히 봤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그리스로마신화를 잘 모른다. 거기다 유럽학과 졸업생이지만, 유럽의 역사는 정말 어렵게 배워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소 귀에 경 읽기는 괜히 있는 속담이 아니다.
그리스가 경제 위기를 겪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지금도 그리스 사람들이 경제가 좋지 않아 많이 힘들다고 한다. 그 우울함이 거리 곳곳에 녹아있다고 해서 약간은 걱정이 된다. 말레이시아에서 아테네를 왜 가냐고 비행사 직원에게 질문을 당해서 앞으로의 여정이 현실로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흉측한 그라피티가 벽에 도배되어 있고, 마약과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최근에 대규모 사망자와 사상자가 발생한 열차사고로 정치지도자를 향한 민심이 좋지 않아 시위와 파업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고도 한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겠지. 그리스로마신화도 유럽역사도 회사생활하다 보니 아예 잊었지만, 아크로폴리스는 얼마나 장엄할지 기대가 된다. 부디 모든 것을 볼 수는 없겠지만, 내게 보이는 것들의 소중함을 알아볼 수 있는 나이길 바라본다. 그나저나, 유로 환전해야 되는데 꼭대기를 모르고 계속 오른다. 내일은 유로가 떨어져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