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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이블 Jul 10. 2021

나의 발나이

  '삐릿 삐릿'

  급히 누른 탓에 현관 비번을 또 잘못 눌렀나 보다. 양손에 장바구니를 든 채로 다시 누르니 손가락이 무게를 못 이겨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나는 일부러 놓치고 만다. 계란도 없는데 뭐. 일단은 손이 자유롭고 보자. 다시 천천히 누른다.

  '삐리릭'

  됐다. 다시는 무거운 건 사지 말자.




  집에 들어서니 신발 벗어 놓을 공간을 찾느라 다시 한번 장바구니를 던지듯이 들여놓는다. 4 식구 현관 바닥은 언제나 12 가족 분의 신발이 채워져 있다. 깔끔한 남편이 도대체 사람은 넷인데 신발은 왜 12켤레가 나와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할 때 내가 가끔 쓰는 변명 아닌 변명. 도둑이 들어왔다가 머릿 수 계산에서 밀려 도로 나갈 거라는... 언젠가부터 딸아이의 신발 사이즈는 엄마와 같아졌고 아들의 신발 사이즈는 아빠보다 커졌다. 신발만 보면 이 집은 어른 4명이니 나쁠 것 없지 않은가. 보통 여자들은 한 계절만도 3~4켤레 다른 종류의 신발을 신곤 한다. 지금은 여름이니 샌들, 슬리퍼, 운동화는 기본이고 또 망사로 된 단화, 그리고 플랫 슈즈 이 정도가 기본이라고나 할까. 아들은 보드 탈 때 신는 신발, 농구할 때 신는 신발, 학교갈 때 신는 신발 이렇게 계절과 상관없이 3켤레, 남편은 언제나 1켤레, 그러니 나머지 8켤레의 주범은 딸아이와 나다.




  요즘 딸아이는 어글리 슈즈를 즐겨 신는다. 하필 왜 '어글리'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이 단어 안에는 분명 '편하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라인이 곱고 예쁜 그런 신발은 아니란 뜻이다. 그러고 보니 신발은 모양이 예쁠수록 어딘가 불편하거나 어색하다. 20대에 난생처음 하이힐을 신어본 그 순간의 기억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온몸은 앞으로 쏠리고 허리는 도무지 똑바로 펼 수가 없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일은 거대한 지구를 들어 올리는 만큼이나 받아들일 수 없는 불편함을 주었다. 남들도 다 신는, 여성으로서의 통과의례쯤으로 생각했던 나 자신을 책망하며 왜? 무엇 때문에 나는 이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라고 분노의 자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길거리의 그 많은 하이힐을 신은 발들이 내 눈 앞으로 훅 다가왔다. 저들은 하이힐을 신고 똑바로 걷는 연습을 따로 한 걸까? 갑자기 그녀들이 세상 존경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로 나는 다시 한번 시도를 해 보았지만 이 하이힐을 내 발에서 뿐만 아니라 내 인생에서 완전히 벗겨내 제거하는데 불과 30분도 걸리지 않았음을 고백하는 바이다. 걷기 위해 필요한 신발임에도 불구하고 걸을 수 없는 신발을 신는다는 그 이상한 모순의 선택이 적어도 나에겐 용납되지 않았다. 그 뒤로 나는 정장이나 샤랄라 드레스를 입더라도 신발은 항상 낮은 굽에 쿠션 뾱뾱의 단화나 샌들 혹은 운동화도 불사하는 패션테러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곤 했다. 지금은 젊은 여성들이 정장에도 운동화를 신는 모습을 종종 보곤 한다. 하지만 20~30년 전 그런 모습은 누가 봐도 어이없는 조화였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정장을 입으려면 구두를 신어야 했고 운동화를 신으려면 캐주얼한 옷을 입어야 했고.



  나도 어글리 슈즈가 있다. 정말 너무 편해서 나는 러블리 슈즈라고 부른다. 생긴 것만으로 가치부여를 하기에는 어쩐지 억울하다. '예쁘다'라는 말은 반드시 외모와 관련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아이들이 어릴 때 어른들은 '이쁜 짓'이라는 말로 종종 아이들의 행동 선택에 기준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아이들은 내가 한 행동이 '이쁜 짓'에 해당하고 그래서 어른들이 예뻐해 주고 행복의 보상을 해 주었던 경험을 통해 나는 '예쁜'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투박하고 거칠어 보이는 어글리 슈즈가 나에겐 너무 예쁜 슈즈가 될 수밖에 없음을 더 말해 무엇하랴.


러블리 슈즈


 인체 공학적 디자인과 기능적 소재로 편안함을 컨셉으로 한 신발 브랜드들이 있다. 이런 브랜드들의 경우 어김없이 이용 연령대가 주로 내 나이 이상의 어머님들인 경우를 많이 보았다. 디자인보다는 편리함을 고민없이 바로 선택하는 연령이기 때문일까? 20대에 이미 그런 선택을 해버린 나는 발나이가 꽤 먹었을 거다. 오늘도 하늘하늘한 원피스에 어글리 슈즈를 신는다. 뒤에서 흘러나오는 딸아이의 한마디는 무시하기로 하자.


  "엄마, 원래 딸들은 엄마 화장대서 립스틱 발라보고 신발장에서 엄마 뾰족구두 신어보고 그렇게 크는거야. 나는 당췌 해 볼 수 있는 게 없잖아. 근데 그 컨셉은 대체 무엇? 상하분리?"





<사진출처> 미리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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