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면 수박만한 과일이 있을까. 핑크색 물이 뚝뚝 떨어지도록 들고 먹는 수박의 그 식감을 아이들은 "엄마, 수박 가루가 너무 맛있어요"라고 한 적이 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다시 먹어보니 당도가 높은 수박일수록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려운 그 까끌한 느낌이 정말 가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어릴 때부터 먹어왔던 부채꼴 모양으로 수박을 자르고 아이들에게 커다란 쟁반 받침 하나씩 함께 주곤 했다. 덜어 먹는 용도라기보다 흘리며 먹고 난 그 뒤처리를 조금은 수월하게 하고자 하는 엄마의 계산된 배려였다. 하지만 그 짠득짠득한 핑크 국물은 여지없이 아이들의 손목에서 팔을 타고 흘러내려 팔꿈치에서 모인 뒤, 꼭 쟁반의 바깥쪽으로 뚝뚝 떨어지고 만다. 입과 코, 볼까지 반들반들 수박물로 마사지를 하며 배가 출렁일 때쯤이면 이미 아이들의 옷은 턱받이 모양으로 상의가 적셔진 후였고, 식탁뿐만 아니라 바닥까지 흥건한 수박물과 수박씨 파편들로 한바탕 난리가 나기 일쑤였다. 우아하게 수박을 큐브로 싹싹 썰어 놓고 얇실한 포크로 콕콕 찍어 한 입에 넣어 먹어도 좋으련만 아이들은 그런 우아한 수박은 맛이 없다며 늘 그 부채꼴 모양으로 잘라 달라고 했다. 아들은 한 술 더 떠서 아예 보트 수박을 달라는 것이다. 그 작은 얼굴과 입을 수박 보트 안에 파묻고 정말 파도 타듯이 왔다 갔다 쓸어 먹는 재미와 입 안 가득 모인 수박씨들을 다연발로다가 풰풰풰 쓰레기통 안으로 골인시키는 짜릿함까지... 치우는 사람이라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어쨌든 수박 먹는 날은 무조건 목욕하는 날이 되었고 동시에 그날은 늦게 재울 수 있는 한 최대로 늦게 재우는 날이 되었다. 내가 가능한 오후 3시 이후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는 것
처럼 아이들도 가급적 저녁에는 수박을 먹지 않는다는 룰이 있었다. 자기 직전까지 화장실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몸속 어디에 저장되어 있었는지 수박 수분이 꼭 자는 동안에 자꾸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박 데이는 한바탕 난리 데이가 되었지만 나는 그 짠득한 두 손과 턱받이 모양으로 젖은 옷의 얼룩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저 초록 진한 수박 한 통으로 온 가족이 붉고 달콤한 웃음을 나눌 수 있지 않았는가. 지금은 수박을 먹는다고 해서 웃지는 않는다. 아무도 부채꼴 모양, 보트 모양을 주문하지도 않는다. 그 옛날 내가 생각했던 그 우아한 방법의 수박 먹기가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큐브 모양으로 각각의 그릇에 담아 놓으면 동그란 구슬이 달린 꼬챙이식 포크로 콕콕 찍어 먹을 뿐이다. 수박 자르기 담당 남편은 커팅 시간이 더 많아진 점과 자르는 동안 자투리 부분을 너무 먹어서 수박의 한가운데 맛을 늘 모르고 수박 타임이 끝난다는 점을 간혹 불평할 뿐, 그 한바탕 난리의 추억을 잊은 지 오래다.
가끔 생각한다. 가족의 웃음도 나이를 먹는구나 하고. 지금은 우리 가족이 무엇에 웃고 무엇에 난리가 나는가. 가끔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박장대소하거나 어디서 듣고 온 우스개 소리를 전해주는 아이들 이야기가 정말 웃겨서 나와 남편은 호흡이 가빠지도록 웃을 때가 있다. 그러면 아이들은 "헉, 대박~ 이거 몇 년 된 이야긴데..." 하며 또 웃는다. 웃음의 지점은 조금 달라졌지만 아직 우리는 아이들이 웃음을 주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슬픈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정말 부모가 웃음을 줄 수는 없을까? 남편은 가끔 오버할 준비를 한다. 어린 애기들을 대하는 초보 아빠처럼 말이다. 말리고 싶은 마음 굴뚝인 채로 오늘 저녁, 아주 오랜만에 부채꼴 모양으로 수박을 잘라 놓는다. 한 바탕 난리가 나도 좋으니 그 옛날 수박 가루 이야기처럼 달콤하고 시끌시끌한 장면을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