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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Aug 11. 2019

통증보다 더 무서운 것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니까


     

환한 조명 아래 수술대에 누웠다. 눈이 부셔서가 아니라 그 하얀 빛이 너무 차갑게 느껴져 눈을 감았다. 의사가 왼쪽 어깨 여러 군데에 쑤시듯이 마취주사를 놓았다. 아프기도 했지만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너무 추워요.”

“무균실이라 온도가 낮아요. 담요 덮어 줄게요.”  


내 몸의 일부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왼쪽 팔은 이제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여기 있는데 저만치 의사 앞에 길게 누워있는 건 거무튀튀한 나무줄기 같았다. 징그러워 다시 눈을 감았다. 내 머리는 이상하게도 왼쪽 팔이 가슴을 누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머리로는 왼팔을 들어 올렸는데 여전히 왼팔이 가슴을 누르는 상황이 꿈처럼 반복되었다.



 

“진짜 크죠? 엄청 아팠을 텐데 어떻게 참고 살았어요?”  

  

의사가 떼어낸 혹을 가까이 가져와 보여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고 귀여웠다. ‘쥐눈이콩만 한 녀석이 그렇게 날 아프게 한 거야?’ 왼손 약지 손톱을 부딪힐 때마다 손끝부터 온몸으로 퍼지던 통증의 크기에 비하면 어이없을 만큼 작았다. 10년 이상 내 몸속에서 기생하던 녀석과 처음이자 마지막 대면이었다.  '잘 가라, 이제 오지 마.' 하마터면 의사 앞에서 소리를 낼 뻔했다.  


   


달랑 손가락 하나 붕대로 감은 채 침대를 타고 이동했다. 입원실에 들어가 문병 온 언니와 형부를 보자 조금 쑥스러웠다.


“괜찮아. 하나도 아프지 않다니까.”  

   

씩씩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언니를 보며 돌아앉았는데 왼팔은 뒤에 있었다. 마취가 풀리지 않은 왼팔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거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들어와야 온전히 돌아앉은 모습이 되었다. 내 몸이지만 전혀 의식할 수 없는 상황이 낯설었다.   


수술한 담당의사가 왔다. 마취는 6시간에서 12시간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고 했다. 통증을 느낄 수 없으니 세게 부딪혀도 모른다고 마취 풀릴 때까지는 조심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마취가 6시간 이상 지속되는데, 세게 부딪혀도 모른다면서 왜 무통 주사액이 벌써 들어가지?’  

 

의심하는 순간 식판이 들어왔다. 24시간 만에 마주한 밥이라 정신을 놓고 먹었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간호사가 들어와서 식후에 먹을 진통제를 나눠주고 진통 주사를 놓으러 다녔다. 나는 마취도 전혀 풀리지 않았고, 무통 주사액이 진즉부터 들어가고 있으니 주사는 안 맞겠다고 했다.    


“곧 마취 풀릴 수도 있으니 미리 맞아 두세요.”


  

기어이 탈이 났다. 예방 주사처럼 진통제를 맞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마취가 안 풀려 통증을 전혀 느끼지도 못하는데 수액 줄로 무통 주사액이 들어가고, 진통 주사까지 맞으니 바로 속이 울렁거렸다. 결국 24시간 만에 먹은 밥을 다 토하고 말았다. 간호사는 즉시 무통 주사액 공급을 중단했다.     



고3 시절 스트레스 때문인지 두통과 치통이 자주 왔다. 시험이 있으면 컨디션을 위해 견딜만한 통증에도 진통제를 먹었다. 만병통치약인 줄 알았다.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다 나은 거라고 바보처럼 믿었다.   


   

작년 여름에 언니가 대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건강 검진 하러 가기 얼마 전에 언니는 우리 가족과 휴가도 다녀왔다. 화장실 가는 게 조금 불편한 거 외에는 이렇다 할 통증도 없었다고 했다. ‘몸 안에서 암 덩어리가 크게 자라는 동안 모를 수도 있구나.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게 통증이 있는 것보다 무섭다는 사실을 이번에는 내 몸을 통해 알았다. 아프지 않은 게 아니라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건  너무 위험하니까.  


        

수술 후 15시간 만에 왼손이 찌릿찌릿 저렸다. 마취가 풀리면서 왼손의 손가락들이 저절로 꿈지럭거렸다. 내 의지로 명령을 내렸다. ‘왼손 엄지와 검지로 가려운 머리를 긁어라.’ 몇 시간 전에는 그 사소한 행동도 내 맘대로 할 수 없었는데.


 ‘앗!’ 수술한 손가락이 욱신욱신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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