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모월 모일 스물한 살 청년은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입대 1주일 전에는 여자 친구와 함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밀고 왔다. 머리 깎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았다면 내 비록 무뚝뚝한 어미지만 울컥했을 텐데......
여리고 약하기만 했던 아이가, 마르고 키 작았던 소년이 이제는 늠름한 사나이로 보여 오히려 마음을 놓았다.
모월 모일 파주 28사단 신병교육대로 온 가족이 함께 갔다. 훈련소 근처에 도착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통제했다. 남편은 큰아들에게 처음 쓴 손편지를 주었고, 아들은 편지 한 통 달랑 들고 차에서 내렸다.
'얼마나 불안하고 긴장될까?' 나는 입대한 경험이 없으므로 아기를 처음 출산하러 가는 엄마의 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색한 듯 제 손으로 자꾸 민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홀로 걸어가는 자신을 격려하는 것도 같았다. 아기를 낳으러 병원으로 향하던 20여 년 전의 내가 연신 배를 쓰다듬었던 것처럼. 그래서 나는 울지 않았다. 차창을 내리고 녀석의 뒤통수에 대고 크게 외쳤다.
"아들, 파이팅!"
아들을 파주에 두고 13시간 만에 집에 돌아오니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이 도착해 있었다. 몸은 피곤한데 허허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책을 펼쳤다. 이런 우연이라니! 시인은 파주에 살고 있단다. 아들과 같은 도시에 있는 시인의 이야기에 밤늦도록 귀를 기울였다.
훈련소에 들어가면 편지도, 전화 연락도 불가능한 줄 알았다. 그런데 주말이 되자 전화가 왔다. 우편으로 보내는 편지나 소포는 안 되지만 '더 캠프'라는 앱을 깔면 온라인 위문편지도 쓸 수 있다고 해서 놀랐다.
11살 때 국군의 날을 앞두고 '국군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처음 썼던 것 같다. 내성적이고 소심했던 나는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었다. 60명이 넘는 반 아이들 가운데 나처럼 개성이 없는 아이는 하루 종일 선생님 입에서 이름 한 번 불리지 않는 날도 많았다. 그런데 위문편지를 쓴 날 담임 선생님은 내 이름을 부르며 참 재미있게 썼다고 칭찬하셨다. 편지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의 한 마디는 가슴 벅찼던 추억이다.
대학에 다니던 시절, 군대 간 남자 친구에게 위문 편지를 써보고 싶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이미 제대한 선배를 잠시 만났고, 동갑이었던 친구는 웬일인지 3학년이 되었는데도 군대 갈 생각을 안 했다. 그러나 뒤늦게 기회가왔다. 스물여덟에 만난 남자 친구는 나이가 한 살 위였으나 대위로 군생활 중이었다. 삐삐 밖에 없던 나와 달리그는 휴대폰이 있었지만 훈련 중에는 통화가 어려워 편지를 쓰곤 했다.
내가 오래오래 만난 사람들은 모두 편지를 주고받은 사이다. 박연준 시인은 '모든 독서는 이야기를 훔치는 일일지도 모른다'라고 했는데 편지는마음을 훔치는 일이다. 스물여덟의 나는 편지로 그의 마음을 훔쳤고, 그의 편지에 마음을 빼앗겼다. 아들이 있는 파주 신병교육대에서 고개 하나만 넘어가면 우리가 신혼을 보냈던 연천군이다.
나이 50에 위문편지 쓸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큰아들에게 온라인으로 위문편지를 썼다. 벌써 내일이면 훈련소 수료식을 하는 날이다. 이제 자대에 배치되면 오랜만에 예쁜 편지지도 사서 손편지를 써야겠다. 생각해보니 둘째는 이제 겨우 13살. 내 나이 60에도 위문편지를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들이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기 바란다. 전국에서 모인 동료들과 함께 부대끼며 새로운 경험들을 쌓아가기를.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면 2021년 모월 모일 제대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