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산에 오르기 위해 처음 사오갯샘 앞을 지나갈 때는 무심했다. ‘어머, 아직도 우물이 남아있네.’ 우물 위에 뚜껑처럼 철판을 얹어놓아서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샘에 이름이 있는 것도 몰랐다.
몇 달이 지나 다시 우물을 만난 날에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설마 저 안에 맑은 샘물이 있을까?”
“한번 뚜껑 열어 볼래?”
남편이 우물 위에 얹어놓은 철판을 들어 올리자 찰랑찰랑 맑은 물이 바로 눈앞에 나타났다.
“이거 우물 맞아? 우물은 깊어야 되는 거 아냐?”
동화에 등장하는 우물은 다 깊었던 것 같은데, 너무 깊어서 두레박을 한참이나 내려야 하던데. 바가지로 떠먹을 수 있는 우물이라니 조금 이상했다. 그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오갯샘은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찾아오는 수량이 풍부하고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샘이었다. 해방 직후 콜레라가 발병하여 인근 마을 사람들이 많이 죽었으나 죽동마을 사람들은 한 사람도 해를 입지 않았는데 오직 사오갯샘 덕분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21세기에 존재하는 우물이 신기해서 한참을 들여다보니 40년도 더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니까 몇 개 안 되는 아주 어린 기억들 중 하나다. 교사였던 고모부가 시골 학교로 발령받아 고모는 계룡산 자락에 있는 마을로 이사를 갔다.
신혼이었던 고모는 동네 큰 집의 사랑채에 세 들어 살았는데, 어린 내 눈에는 그 집 마당이 운동장처럼 넓어 보였다. 꽃밭도 없는 휑한 마당 끝, 담벼락 아래에는 늙은 오이만 한 보라색 가지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심심해서 마당을 어슬렁거리는데 동네에 사는 아이가 들어왔다. 나보다는 한두 살 많아 보였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아이가 우물을 보여 준다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는 것. 안채 부엌 앞에 있는 우물 안을 아이와 함께 들여다보았는데 너무 깊고 컴컴해서 무서웠다. 내가 몇 발짝 뒷걸음질쳤을 때 아이가 말했다.
“여기 우물에 어린 애가 빠져 죽었대.”
그 말을 듣자 두레박을 내릴 마음은커녕 다시 한번 우물 안을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우물 안에서 무언가 툭 튀어나와 나를 확 끌어당길 것 같았다. 얼음이 되어버린 나에게 아이는 또 하나의 비밀을 나에게만 알려준다는 투로 발을 쑥 내밀었다.
“봐라. 한쪽 발가락이 여섯 개야.”
발가락이 여섯 개인 것보다 오리처럼 발가락이 붙어 있어서 더 놀랐다. 기억에 아이는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자랑하는 것 같았다. 무서운 우물 앞에서도, 남들과 다른 발가락을 내밀면서도 당당했던 모습이 특별했다.
오래오래 깊은 우물 속에 묻혀 있던 이야기를 끌어올리면서 특별한 아이는 계속 기억하기로 했다. 늘 남과 비교하고괴로워하는 나를 위해서.
슬픈 비밀을 간직한 깊고 어두웠던 우물은 그만 잊으련다. 맑고환한사오갯샘을 만나니 더 이상 우물이 무섭지 않다. 이제 나에게 우물은 사람을 살린 사오갯샘이다. 마르지도 넘치지도 않고 찰랑찰랑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