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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Jun 21. 2020

순덕 씨의 마지막 팥칼국수

어머니와 함께 한 마지막 식사

팥빵, 팥밥, 팥떡, 팥죽 그리고 팥칼국수.

순덕 씨는 팥이 들어가는 음식은 죄다 좋아했다. 당뇨병을 앓게 되면서 달달한 팥빵은 끊었지만 팥죽이나 팥칼국수는 여전히 즐겨 먹었다.


지난 5월 초  부모님 댁에 갔다. 솜씨는 없지만 밥이라도 한 끼 해드리고 싶어서 장을 봐 가지고 갔는데 부엌 살림살이가 엉망이었다. 바닥은 찌든 때로 끈적끈적했고 냉장고에는 먹다 남은 음식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밤늦도록 남편과 나는 바닥을 닦고 냉장고를 비웠다. 지켜보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치매가 심해진 것 같다며 긴 한숨을 토했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가 좋아하는 불고기를 했는데 아버지는 어머니 걱정 탓인지 서너 숟가락 뜨다가 일어나셨다. 어쩐 일인지 불고기는 양념이 달다고 안 드시던 어머니가 밥 한 그릇을 고기랑 맛있게 드셨다. 설거지를 끝낼 때쯤 큰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점심은 엄마 좋아하는 팥칼국수 먹으러 가자."


아침 식사를 한 지 세 시간도 안 지났는데 팥칼국수 맛집에 갔다. 주차장에서 식당 입구까지 그 짧은 거리에 어머니는 두 번이나 비틀거렸다. 내가 어머니 팔을 붙잡고 걸었는데도 근육이 다 빠진 가느다란 다리는 휘청거렸다.


커다란 옹기그릇 가득 김이 모락모락 나는 팥칼국수를 보자 어머니 안색이 밝아졌다. 드시기 좋게 앞접시에 덜어 드렸는데 칼국수가 입에 닿기도 전에 어머니 바지 위로 팥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신경도 안 쓰고 맛나게 드시고는 한 접시를 더 드셨다. 순덕 씨의 마지막 팥칼국수였다.


내 고향 충청도에는 팥죽은 있어도 팥칼국수는 없었다. 1999년 1월에 결혼한 나는 한 달 뒤 어머니 생신에 난생처음 팥칼국수를 만났다. 큰 시누이네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일찍 도착한 식구들은 점심부터 먹어야 했다.

"엄마 생일이니까 엄마 좋아하는 팥칼국수 해 먹자."

"형님, 팥칼국수요? 전라도 향토 음식인가 봐요. 저는 처음 들어요."

어머니는 처진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그 맛난 걸 막내는 여태 안 먹어 봤냐?"


어머니가 솥에 팥을 안치고 포슬포슬해질 때까지 삶는 동안 형님들은 밀가루를 반죽해서, 덩어리를 나누어 열심히 치대고, 나무 방망이로 밀어서 국수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한껏 부풀어 오른 팥을 으깨어 체에 거르고 팥물을 만들었다. 큰 솥에서 붉은 팥물이 펄펄 끓어오를 때 곱게 썰어 놓은 국수를 넣었다.


뜨거운 칼국수를 한 대접씩 앞에 놓고 식구들은 설탕 한 숟가락을 넣고 휘휘 저었다. 나도 따라 했다. 팥이 들어간 밥도, 죽도, 떡도 죄다 싫어하는 내 입맛에 맞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달짝지근하고 찐한 팥 국물은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호로록호록 빨아들인 두툼한 면발도 오래오래 반죽을 치대서 그런지 쫄깃했다.


딱딱 1인분씩 포장된 라면은 '나 한 젓가락만'하는 가족에게도 눈을 흘기게 하는 야박한 음식이지만 칼국수는 함께 먹는 음식이다. 반찬 없이도 온 가족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한 끼다. 집에서 팥칼국수를 만드는  건 고단하고 번거롭지만  어머니는 부족한 것보다  넉넉하게  끓여  남기는 게 낫다고  했다.


팥칼국수를 먹을 때마다 남편이 풀어놓는 추억이 있다.

"배 터지게 칼국수를 먹어도 국수 배는 금방 꺼지거든. 밤중에 변소 가려고  나가면 엄마가 남은 국수를 쉬지 않도록 찬 마루에 내놓은 게 보여. 식어서 묵처럼 굳어버린 차가운  팥칼국수를 숟가락으로 뚝뚝 떠먹으면 얼마나 맛있던지. 추운 줄도 모르고 먹었다니까."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만에 비석을 세우려고 산소를 다시 찾았다. 일기예보에 큰비가 올 거라고 해서 걱정이 많았다. 가는 길에 잠깐 보슬비가 내리더니 산소에 도착하자 쨍하고 뜨거운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비석 옆에 아버지가 꽂아놓은 비치파라솔은 어머니를 위한 것인지, 우리를 위한 것인지 생뚱맞게 서 있었다. 한여름 땡볕에서 복숭아와 고추를 따고, 감자를 캤던 어머니는 해수욕장으로 피서를 가 본 적이 있을까?


어머니가 자주 해 주셨던 식혜를 내가 처음 만들었다. 날이 더워 얼음까지 띄워서 큰 잔으로 올렸다. 어머니 이름 석자가 새겨진 비석도, 비석 위의 파라솔도, 비석 앞의 식혜도 이제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남은 사람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헛짓거리 같은데 왠지 먼 곳에서 어머니가 보고 있는 했다.


밤이 돼서야 비가 내린다. 초로록초로록 빗방울이 나뭇잎에 닿는 소리만 가득하다. 새벽 2시가 넘었는데 잠이 오지 않아 어머니 식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어머니는 약 기운에 초저녁 잠들었다가 약 기운이 떨어지는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화장실로, 거실로, 부엌으로 서성거렸다. 어깨 통증 때문에 "아이고, 아이고 나 죽겄네." 밤새도록 우는 소리를 했는데 어머니가 없는 오늘 밤은 너무 적막하다.


순덕 씨와 은덕이. 이름만 들으면 친자매 같다. 이름 덕분에 호랑이 같다던 시어머니가 나는 무섭지 않았다. 순덕 씨는 처음 만난  날부터 "막내야, 엄마다." 그랬는데 나는 끝내 한 번도 엄마라고 부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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