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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Jul 09. 2020

노란 동백꽃

첫사랑을 닮은 꽃

귀촌 생활을 보여 주는 TV  프로그램에서 강원도에 사는 젊은 형제가 나왔다.  어머니와 함께 강변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고, 시간이 나면 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거나 꽃을 따다 말려서 꽃차를 만든다고 했다. 꽃을 좋아하는 형이 말했다.

"소설  <동백꽃>에서 동백꽃은 노란 동백꽃이죠.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꽃을 노란 동백이라 불러요."


여태 붉은 동백꽃인 줄 알았다. 아주 오래전에 읽긴 했지만  '노란'이란 단어는 전혀 기억에 없었다. 책장의 책들을 뒤져서 김유정의 <동백꽃>을 찾아 다시 읽었다.

'노란 동백꽃이 소복한 바위틈에서 ~~~'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


왜 붉은 동백이라고 생각했을까? '점순이와 나'의 사랑 이야기니 붉은색이 어울린다고 단정지었나. 다시 생각해 보니 첫사랑에는 붉은색보다 노란색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다. 붉은 동백은 향기가 없는데 생강나무꽃에서는 '알싸한, 향긋한 냄새'가 난다고 하니 노란 동백은 첫사랑올 닮았다.  


김유정 작가의 고향은 강원도 춘천이다. 그런데 왜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 꽃을 노란 동백이라 불렀을까? 내 눈에 앙증맞은 생강나무꽃과 크고 붉은 동백꽃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다. 궁금해서 좀  찾아보았다.



생강나무는 산지의 계곡이나 숲 속의 냇가에서 자란다. 3월에 잎보다 먼저 노랗고 작은 꽃들이 뭉쳐 핀다. 연한 잎은 먹을 수 있고, 9월에 열매가 검은색으로 익으면 기름을 짠다. 새로 잘라낸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나서 생강나무라고 부른다. 꽃말은 찾을 수가 없었는데 쌀쌀한 이른 봄에 추운 것도 모르고 서둘러  피는 작은 꽃이라니 '첫사랑'이 딱이다.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 자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에 피는 꽃이라서  동백이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바닷가에서 많이 핀다고 해홍화라고 한다. 추운 겨울에는 곤충이 없으니 꽃가루받이가 어려워 향기보다는 강렬한 색으로 동박새를 유혹해 수분을 한다. 동백꽃의 꽃말은 '진실한 사랑'이다. 추운 계절에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려면 진실한 사랑이어야겠지.


동백나무 열매에서 짠 기름은 머리를 치장하는데 쓰였는데 조선시대에는 생산량이 적어 왕실이나 사대부집 여인들만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은 동백기름을 구하기 어려워 생강나무 열매를 활용했는데 그래서인지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노란 동백이라고 불렀다 한다.


드디어 의구심이 풀렸다. 주로 따뜻한 남쪽 해안가나 섬에서 자생하는 동백나무를 추운 북쪽 지방에서는 볼 수도 없었으리라. 강원도의 서민들은 생강나무 기름을 사용하면서 가질 수 없는 귀한 동백 기름이라 부르고 싶었는지 모른다.


김유정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어린 나는 생강나무를 몰랐다. 사랑도 잘 몰랐다. 몇 년 전에 처음 생강나무를 보긴 했지만 '알싸한 향긋한 냄새'는 맡지 못했다. 내년 봄, 노란 동백꽃이 드러지면 알싸한 향기에 정신이 아찔해질 만큼 취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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