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철이 없다.
사전에 따르면 '철'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이란다.
팔뚝은 저절로 굵어졌는데 엄마라고 늘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철학을 안 해서 그런가 싶다.
철학이 없으니 불안과 욕망 사이에서 하루에 열두 번은 널뛰기를 한다.
<나는 철학하는 엄마입니다>를 쓴 이진민 작가는 나보다 어리지만 달랐다.
정치 외교와 정치 철학을 공부한 박사로 어린 아들 둘을 독일에서 키우고 있는 엄마다.
작가는 진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은 엄마가 되던 그날부터였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철학이 말랑말랑하게 녹아있는 순간들을 발견했다고.
나는 엄마가 된 지 20년도 더 지났지만 철학이 없다.
20대에 가졌던 인생철학마저 육아를 하면서 잃어버렸다.
'나는 왜?'라는 질문보다 '너는 도대체 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질문이 아니라 비난이고 악다구니란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저 철학자의 명언일 뿐이었다.
한 달 전, 둘째가 방학식 날이니 친구들과 PC방에 가고 싶다고 전화로 허락을 구했다.
'두 달도 채 안 되는 1학기의 마지막 날이라 많이 아쉽구나'하며 쿨한 엄마 모드로 오케이를 외쳤다.
전화를 끊고 나니 '거리를 두고 앉아라. 마스크는 꼭 쓰고. 불라불라~~' 당부를 빠뜨린 게 생각났다.
바로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폰 신경 안 쓰고 친구들과 노는구나' 그렇게 넘겼다.
방학에도 둘째는 농구를 배우러 학교에 나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우산이 없는 아들을 데리러 학교로 갔다.
서로 길이 엇갈릴까 봐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받을 수 없다는 음성 메시지만 계속 들렸다.
오래 기다리다 만난 녀석은 수업 중이라 무음 상태였다고 했다.
방학이 겨우 2주 정도라 농구교실은 일주일 만에 끝나버렸다.
고작 한 시간이 조금 넘는 분리의 시간이지만 혼자 즐기는 꿀 같은 시간이었는데 아쉬웠다.
둘째도 잔소리에서 해방되는 시간이 끝나서 나 만큼이나 서운했을 것이다.
둘째가 태어난 지 18개월쯤 되었을 때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분리 불안이 심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울고불고 버둥거렸고, 어린이집에 두고 나오면 한참이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울음소리를 뒤에 두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나도 따라 울 때가 많았다.
이렇게 억지로 아이를 떼어놓아도 되는 건지, 분리 불안이 더 커지는 건 아닐까 고민이 깊었다.
첫째도 한 달 정도 그런 시간을 보내고 어린이집에 적응했던 경험이 있어 좀 더 버텼다.
두 달이 다 되도록 둘째의 울음이 잦아들지 않아 결국 어린이집을 포기했고, 일 년 더 우리는 24시간 함께 했다.
불안의 개념을 연구한 철학자 라캉은 '불안이 결핍에서 온다기보다 결핍이 결핍되었을 때 온다'고 했단다. 내가 맞벌이를 하느라 첫째는 돌도 되기 전부터 이모가 돌봐줬지만 둘째는 전업주부인 나와 신발 한 켤레처럼 붙어 있었다. 분리의 경험이 없었기에 더 큰 불안을 겪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우리는 6개월간 거의 24시간을 부대꼈다.
어린이집을 포기했던 그때 이후 처음이었다.
분리 결핍의 시간.
같은 공간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게 되면서 불안은 커지고 갈등은 잦았다.
게임 중독은 아닌지, 편식은 점점 더 심해지고 운동은 안 하는데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내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잔소리로 전달되었다.
먹거리와 학원 숙제, 취침과 기상 시간, 전쟁터 같은 아들의 방 모든 게 갈등의 씨앗이었다.
철학이 없는 엄마와 철학을 모르는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유치한 말싸움을 이어나갔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기어이 핵폭탄이 터졌다.
하루 중 스마트폰이 아들 손에서 분리되는 시간은 학원에 있는 두세 시간과 취침 시간뿐이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양치질을 하면서도 놓지 않았다.
"빨리 양치하고 자."하고 먼저 안방에 들어가 누웠는데 화장실에 들어간 녀석이 나올 기미가 없었다.
서서히 뜨거워지던 가슴에서 폭탄이 터질 것 같아 화장실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 받지 않았다.
기어이 불이 붙고야 말았다.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너 왜 전화 안 받아?"
"무슨 전화? 안 왔는데..."
"너 요즘 엄마 전화 계속 안 받았잖아?"
"안 왔다니까?"
방귀 뀐 놈이 성내는 법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드는 녀석은 응징해야 마땅하다.
냅다 아들의 손에서 폰을 낚아챘다.
억울한 건지, 핸드폰을 뺏겨 불안한 건지 아들은 울먹였다.
"진짜 전화 안 왔다고? 왜 내 말 안 믿어?"
통화 기록을 확인해 보니 헉! 진짜 통화 기록이 없었다.
연락처의 상세정보를 찾아보니 내 번호가 수신 차단 상태였다.
배신감, 그리고 절망.
침대로 돌아와 누웠지만 잠이 올 리 없었다.
철학하는 엄마, 이진민 작가는 말했다.
내 몸 안에서 자라고 있는 태아도 '나'이지만 '나 자신'은 아니라고(me, but not myself).
내 안에서 독립하여 12년을 성장한 아이를 나는 어떻게 생각한 것일까?
'나'로 심지어 '나 자신'으로 착각한 것은 아닌가?
아이가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아들을 심리적으로 분리하지 못했다.
수신 거부든, 차단이든 독립된 객체인 아들의 선택인데 내가 왜 이 난리를 치는 걸까?
나는 누군가를 마음으로 거부한 적이, 심리적으로 차단하고 싶은 적이 한 번도 없었나?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아이와 물리적인 분리를 원했으면서 왜 심리적인 분리에는 발끈하는지.
둘째의 수신 차단을 겪고 나서야 나도 누군가에게 차단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니 내 연락처에서, 카톡에서 사라진 번호들도 꽤 있더라.
내 마음이고 내 선택이었을 뿐이다.
24시간 오프라인, 온라인으로 연결된 시대.
분리의 결핍이 우리를 더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다.
학교와 친구로부터 분리된 아이들, 직장과 동료로부터 분리된 어른들, 이런 경험은 모두 처음이라 더 힘들다.
외식과 모임 그리고 여행의 결핍이 이제 조금 견딜만하다.
아들과의 심리적인 분리도 점점 익숙해지겠지.
아들과 스마트폰 분리 시간도 점점 늘어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