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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Jul 11. 2020

심심한 중년이 싫어서

별들에게 들이대는 중

연애도, 일도 실패한 적이 별로 없다. 도전을 많이 안 했다는 뜻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번번이 나는 그 장애물을 넘지 못했다. 달려가기도 전에 넘어져서 다칠까 봐 걱정부터 했다. 결승점은 별처럼 멀어 보였고, 장애물은 너무도 가까운 내 안에 있으니 늘 출발점에서 머뭇거렸다.


열두 살 내 가슴에 작은 몽우리가 생긴 것처럼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몽글몽글 수줍게 피었더랬다. 학생회장 선거에 나온 6학년 선배였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도 마음속으로 열렬히 응원했지만 선배는 회장이 되지 못했다. 선거가 끝나 선배를 자주 볼 수 없는 게 나는 더 안타까웠다. 마음속으로 그 선배를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소녀들은  아무에게나 오빠라는 호칭을 붙이지 않는다.)


그 오빠를 다시 만난 건 할머니 가게에 갔을 때였다. 우리 한복 가게 맞은편에 아이들 옷가게가 생겼는데 바로 오빠네 가게였다. 그 뒤로 자주 마주쳤지만 나는 부끄러워 시선을 피할 때가 많았다. 오빠가 딱지를 접어 내 앞에 던지기도 하고 작은 인형을 전해 주기도 했지만 도망가기 바빴다. 자신감이 1도 없었다.


넙적한 얼굴에 통통한 외모가, 썩 좋은 편도 아닌 성적이 나를 소심하게 만들었다. 예뻐지는 것보다 공부가 조금 쉬워 보였다. 거절당할 일도 없고, 성형수술처럼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엉덩이는 충분히 무거웠으니. 그렇게 마음속 별을 그리며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멋진 스무 살이 되어 당당하게 마주하리라' 주문을 외우면서.


오빠가 먼저 대학생이 되면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은 좀 했다. 고3을 앞둔 겨울방학에 고향집에 내려갔더니 그가 대입에 실패해서 재수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의 실패는 안타깝지만 나는 기뻤다.


대입고사 예비 소집 날, 수천 명이 북적이는 학교 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그를 보았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내 얼굴에 그의 시선이 닿았을 때,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지만 나는 고개를 떨구고 걸었. 아직 장애물을 넘지 못하는 열아홉이니까. 그저 나란히 합격하기만 간절하게 바랐다.


운명처럼 우리는 같은 학교 동기가 되었다. 스무 살의 아름다운 재회를 수없이 상상했다. 어느 날, 학생회관 식당에서 땀을 흘리며 더운 밥을 먹고 나오는데 1층 로비에서 그와 딱 마주쳤다. 순간 주변은 깜깜한 밤하늘 같았다. 별이 가까이에 있었다.

'인사라도 해. 빨리 무슨 말이라도 좀 하라고. 앗! 고춧가루 꼈으면 어쩌지? 아, 땀으로 떡진 머리. . . . . .'


스무 살이 되었는데 두려움은 그대로였다. 이대로 심심한 청춘을 보낼 수는 없었다.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다른 별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연극'.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막연한 동경이 있었다. '연습하다 보면 자신감도 생기고 무대에 오르다 보면 이깟 두려움쯤 극복할 수 있겠지.'


호기롭게 학생회관 2층에 있는 연극 동아리방 앞까지 갔다.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선배들의 연습하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감 넘치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압도하는 표정과 카리스마.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다. 끝내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 도전해서 실패한 게 아니라 '도전하기'에 실패했다.


터덜터덜 연극 동아리방 맞은편에 있는 음악감상실로 갔다. 혼자 생각하기 좋은 장소였다. 대부분 긴 클래식 곡을 틀어주는데 마침 그 시간에는 신청곡을 받아 디제이가 노래를 소개하고 들려주었다. 라디오를 듣는 느낌이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다가 디제이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새로운 별이 보였던 거다. '아! 목소리로 하는 거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무대에서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목소리만 들려주는 거라면 할 수 있어, 정말 하고 싶어.' 심장이 마구 뛰었다. 장애물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에게 달려가 조언을 구했다. 음악감상실 디제이는 어떻게 될 수 있는 거냐고. 친구는 딱 잘라 말했다.

"방송반?  경쟁이 엄청 치열해."

"아~~ 거기도 방송반에서 하는 거구나."

"방송반 시험도 볼 걸?"


그랬다. 사람이든 일이든 실패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포기했다. 장애물이 없는 편하고 안전한 길만 골라 다녔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 더 큰 두려움을 만났다. 곧 백수가 될지도 모르는 미래에 대한 불안. 그때나 지금이나 취업이 힘들기는 마찬가지. 임용고시나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1년 더 공부한다며 학원에 다녔다. 구직 활동을 하긴 했으나 채용 공고도 별로 없었고, 그나마 남자를 채용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벼랑 끝에 서고 보니  마음속 장애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채용 공고도 없는 세 곳의 백화점 인사과에 간절함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세 곳 모두 답이 없어도, 거절하더라도 상처 받지 않기로 했다. 결과는 한 곳은 묵묵부답. 다른 한 곳은 정중한 거절의 메시지를 우편으로 보냈다. 나머지 한 곳에서는 채용 계획은 없으나 용기가 가상하여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결국 채용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도전하기'는 성공한 셈이다.


'도전하기'에 실패한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7년 동안 내 마음속 별이었지만 오빠는 내가 좋아했다는 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내가 연극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면 '너는 안돼'하고 거절했을까?  아무리 못해도 그때 시작했다면 3학년쯤에는 무대에 설 수 있었을 텐데. 친구가 방송반 경쟁률이  높다고는 했지만  공영 방송국도 아닌데 시험이라도 한 번 볼 걸 그랬다.


이제 첫 번째 별은 너무 멀어보이지도 않는다. 두 번째 별은 우리 동네 작은 무대에서 만났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연극이었는데 연습하는 몇 달 동안 참 행복했다. 세 번째 별은 이제 만나고 싶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더 또렷하게 더 밝게 빛나고 있다. 언제나 별은 같은 자리에 있었지? 내가 멀어지거나 다가갈 뿐이고. 심심한 중년이 싫어서 별들에게 들이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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