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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Oct 27. 2020

차차 맑음

내게 말을 걸어서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습니다.

창밖에도, 가슴속에도 비가 자주 내렸습니다.

젖은 마음을 말리고 싶어서 비가 그쳤길래 자전거를 끌고 나갔습니다.



하늘이 흐려서 동네 한 바퀴만 돌 생각이었는데 내친김에 옆동네까지 갔습니다.

공기는 눅눅했지만 속도를 내고 달리니 푹 젖었던 마음도 공기만큼 습도가 내려갔어요.

잠깐 빵집에 들러 다음 날 아침에 먹을 식빵을 사 가지고 나왔는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그냥 실컷 맞아 보자'하고 페달을 굴렀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빨간 신호등 앞에 멈춰야 했습니다.

비는 점점 더 세차게 쏟아졌고, 횡단보도 건너 우산을 쓴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조금 전까지 괜찮았던 마음이 나만 홀로 비를 맞고 서 있는 것 같아 다시 푹 젖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어떤 분이 다가와 우산을 씌워 주며 말했습니다.

"잠깐이라도 같이 쓰게요."



환하게 초록불이 켜졌습니다.

"고마웠어요(내게 말을 걸어서)" 큰 소리로 외치고 힘껏 페달을 굴렀습니다.

온몸은 흠뻑 젖었지만 마음은 햇볕에 널어놓은 것처럼 짱짱하게 말랐습니다.



장마가 지나간 후에도 구름은 오고, 가끔 비가 내립니다.

마음속에도 먹구름이 꼈다가, 소나기도 쏟아졌다가 차차 맑아지기도 합니다.


누군가와 우산을 함께 쓸 수 있다면 비가 와도 괜찮습니다.

흠뻑 젖은 누군가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 주는 사람이 되고도  싶네요.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어요.

곧 서리도 내리고 하얀 눈도 오겠지요.

풀도 나무도 열매도 젖으면서 자라고, 마르면서 여무는 것처럼 사람도 그렇게 사는 거지요.


내일 날씨는 '맑음'이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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