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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Aug 18. 2019

아들아, 밥을 부탁해

맛있는 글밥을 지을 때까지


         

에세이 <소년의 레시피>를 쓴 배지영 작가처럼 밥해 주는 아들과 남편이 나에겐 없으니 글은 못 쓰겠다 했다. 수술하고 오른손도 아닌 왼손의 손가락 하나 붕대로 감았는데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게 더 많다.   

  

한 손으로 쌀은 대충 씻어 안칠 수 있지만 채소를 썰 수도 없고, 설거지도 못한다. 걸레도 빨 수 없다. 이런 것은 못해도 좋기만 하다. 다행스럽게 우리 집에는 붕대 감은 손가락이 들어가는 고무장갑도, 비닐장갑도 없다.

   

시각과 미각이 남달라 맛없어 보이거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은 거들떠도 안 보는 큰아들이 요리를 한다. 남편은 설거지를 맡았다. 둘째는 빨래를 널어 준다. 닥치니까 다 하더라.    

 

“밥 먹자 ~ ~.”

“밥 먹으라고.”

“밥 먹으라니까.”   

  

평소에 최소 세 번은 얘기해야 꾸물거리며 나오는 녀석이 밥을 해 주다니 감격스럽다. 그러나 절대 티는 안 낸다. 붕대 감은 손가락을 쳐들고 묵묵히 밥을 먹었다. 20년 동안 입맛 까다로운 녀석이 애를 태우더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흐뭇했다.

     

여느 엄마들처럼 밥그릇 가지고 쫓아다니는 열혈 엄마는 아니었지만 손맛이 없는 나를 자책하며 괴로운 날들이 많았더랬다. 너무 작고 말라서 거꾸로 사촌 동생의 옷을 물려받아 입힐 때는 속이 상했다.

     

시어머니가 큰아들 어릴 때 자주 하던 소리가 있다.   

  

“아가 왜케 빼짝 말랐냐?”

“잘 안 먹어요.”

“다른 애들은 다 키워도 쟈는 내가 못 키우겄다.”  

   

아들이 가리는 것도 많고, 입도 짧은 건 엄마인 내가 더 잘 알지만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섭섭했다. 셋째 시누 아이들을 오래 키운 적 있는 어머니가 우리 애는 키워보지도 않고 그러시니 손자 걱정하는 마음인 걸 알면서도 듣기 싫었다.    

  

큰아들이 저녁 반찬으로 마파두부를 그럴듯하게 만들었다. 남편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나도 후하게 점수를 줬다. 그런데 둘째가 내 눈치도 안 보고 팩트 폭격을 날렸다.    

 

“형이 한 게 엄마가 한 거보다 더 맛있네.

“그래, 많이 많이 묵어라. 형이 앞으로 쭉 밥 할끼다.”     


나는 농담처럼 진담을 던졌다. 큰아들이 군대 갈 때까지만 밥을 차려주면 좋겠다. 다른 엄마들은 아들이 군대 갈 나이가 되면 짠해서 되도록 따뜻한 집밥을 해 먹이고 싶다는데 애초에 나는 그런 품이 넓은 엄마가 아니다.   

  

수술 일주일 전에 친정 엄마는 병원에 같이 못 가는 미안한 마음을 택배로 보냈다. 열무김치, 깻잎김치, 고추볶음, 삶아서 냉동 보관한 옥수수와 다슬기. 심지어 씻고 다듬어 얼린 대파와 호박까지 바리바리 정성을 담았더라.  

솜씨도 없는 둘째 딸이 손까지 제대로 못 쓰면 세 끼 모두 라면이나 먹지 않을까 전화 너머에서 걱정이 태산이다. 엄마 걱정 말라고 “외식도 하고 시켜 먹으면 되지”했더니 잔소리가 또 한 바가지다.

    

“야, 아침에는 간단하게 아로니아랑 바나나 갈아먹어. 요즘 거 뭐시냐? 노니가 좋다드라. 염증도 없애고 혈압도 낮추고. 사위 자꾸 배 아프다고 그러면 양배추 즙도 좀 먹이고.”   

  

엄마는 부지런히 챙겨 먹으면서 혈압도 내려가고 속이 편해졌단다. 최근에는 약사가 추천한 프로바이오틱스까지 추가했다나. 홍삼즙도 비타민 한 알도 못챙겨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나는 혀를 내둘렀다.    

 

부지런한 엄마를, 엄마의 야무진 솜씨를 닮지 않았을까? 글밥이라도 맛있게 짓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이제 아들이 밥도 해 주는데..... 맛있는 글을 완성하는 날에는 아들 친구들까지 불러다 밥을 해 먹여야겠다.

   

“아들아, 그날까지 밥을 부탁해.”      

    

웃통 벗고 요리하는 큰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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