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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Dec 25. 2021

팝콘 레스토랑의 티 내지 않는 사랑

크리스마스 선물


"하기  싫으면 그만둬."

"네. 지금 그만둡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지만 꾹 참았다. 툭 던져진 얇은 봉투를  챙겨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따귀를 때렸다. 그제야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가 일주일 만에 끝나버렸다.


스무 살의 겨울,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대전에서 유명한  칼국숫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맡은 일은 홀서빙.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뜸한 시간이면 사장님은 주방에 들어가 보리차를 만들어라, 사이드 메뉴인 김밥을 미리미리 싸 놓아라 하면서 쉬지 못하게 했다.


"사장님들은 원래 그래요. 알바들이 노는 거 싫어해요."

거기서  나보다 먼저 일을 시작한 동생들이 그랬다. 그들보다 나이가 많으니까, 아니면  몇 권 읽은 사회과학서의 영향인가 부당한 상황에 그냥 순응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사장님에게 달려가 당당하게 따졌다. 서빙으로 들어왔는데 왜 주방일을 자꾸 시키냐고. 그리고 그만두라는 간단한 말로 끝이 나버렸다.


을의 서러움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니 좋은 사장님도 있을 거라며 같이 찾아보자고 했다. 인터넷은커녕 구직 정보가 있는 지역 신문조차 활성화되지 않은 1990년 12월,  친구랑 대전 극장 근처의 골목골목을 누비다가  레스토랑 입구에 '바텐더 알바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는 우리가 손님으로 보였는지 벌떡 일어나 반갑게 맞았다. 레스토랑에는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남자가 신승훈을 너무 닮아서 좀 놀랐다. 알바를 하고 싶다고 사장님을 뵐 수 있을까요 했더니 자기가 사장이라고 했다. 몇 마디 질문이 오가고  사장님이 우리 학교 대선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강 동안이었다) 사장님은 커피나 녹차 같은 후식을 담당하는 일이라 어려울 것도 없다며 당장 내일부터 나오라고 다. 기쁨에 들떠 나가려는 우리에게 사장님은 팝콘을 한 봉지씩 안겨 주었다. 극장 근처라 식사 후 커플들은 대부분 영화를 보러 가니까 사장님이 개발한 서비스 팝콘이라고.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톡톡 튀는 팝콘처럼 가벼웠다.



단골이 많은 레스토랑, 가족 같은 분위기, 하루 종일 들리는 감미로운 발라드 모든 게 완벽했다. 브레이크 타임에는 주방 이모와 요리사 삼촌들이  밥을 해줬는데 자취생인  나로서는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힘든 일이 없지는 않았다. 이상한 쪽지를 주는 손님도 있었고 하루 종일 카운터 옆 좁은 공간에서 서서 일하는 것도 힘들었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나고  사장님은 자신의 생일이라며 파티를 하자고 했다. 영업이 끝나고 가장 넓은 에 모인  알바들은 놀랐다. 우리가 평소에는 맛볼 수 없었던  함박스테이크, 찹스테이크, 비프스테이크 같은 음식들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가난한 아르바이트생들을 위한 사장님의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스물두 살 군대 갔다 돌아온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다시  떠났다. 대견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을의 서러움도 있을 것이고  따뜻한 밥을 챙겨줄 사람도 없을 다. 다만 나처럼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바람을 가져 본다. 부디 아프지는 말라고  멀리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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