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툰자 Dec 27. 2021

낙서가  그림이 되고 글이 되려면

매일매일


"이거 네가 읽어야지? 왜  여기 두는 거야?"

아들은 교육청 책꾸러미 이벤트로 받은 책 3권을 식탁 위에 꺼내놓았다. 눈꼬리를 치켜뜨고 묻는데 태연하게 답했다.

"난 나중에."

"나중에가 어딨냐? 매일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어야지."



그 책들 중 박완서 작가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가 눈에 띄었다. 나를 위해 고른 책인가  잠깐  감동할 뻔하다  정신 차렸다. 박완서 작가가 생전에 쓰신 660여 편의  산문 중 35편이 담겨 있다. '소설, 동화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이렇게  다니  매일매일 치열하게 쓰는 삶이었구나' 생각했다.



동네 미용실에서  잡지를 뒤적이다가 소설 공모전 광고를 보고  마흔 살의  주부  박완서는 갑자기 소설을 쓰고  싶었단다. 배운 적도 없는데 3개월 만에 원고지 1200여 장을 채워 마감일 하루 전에 보냈고 그 작품 <나목>이 당선되어 작가가 되었다.


잡문 하나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대작가도 글과 삶이  일치하도록  매일매일 다짐하며 썼다고 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된 작가의 진솔함과  소녀 같은 수줍음이 책갈피마다  묻어 있다. 방금 나온 두부처럼 담백하고 따뜻하다.




오랜만에 이웃에 사는 작가를 만났다. 첫 책으로  에세이  <엄마의 원피스>를  펴낸  김준정 작가는 매일매일 읽고 열심히 습작 중이다. 책으로 만난 그녀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공들여  만지고 다듬었는지  은은하게 윤이 났다. 수없이 질문하고 깊이 고민한 흔적들을 마주할 때마다  뭉클했다. 글 쓰느라 애를 써서 그런지 그녀는 전보다 더 마른 것 같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면으로는 살이 많이 찐 것 같았다. 삶과 글이 일치하도록 매일 다짐하며 썼다는 박완서 작가처럼  김준정 작가의 삶과 글도 단단해 보였다.


매일 그리고,  매일 쓰는 사람은 다르다.  매일의 힘이  차곡차곡 쌓여서  짧은 붓터치에도, 문장 하나에도 깊이와 개성이 드러난다.  이중섭  화가가  담뱃갑  은박지에도 그림을 그렸듯이  좋아하니까  힘들어도 매일매일  하는 사람들은 유명하지  않아도  이미 예술가다.




영어 단어는  매일매일 외우라고, 수학 문제는  많이 많이 풀수록  실력늘 거라고,  조금씩이라도 좋으니  제발 책을 읽으라고  아들에게  구시렁거렸는데.  정작  나는 지금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있는가? 아들이 뭔가를 좋아해서 어려워도 꾸준히 해 나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도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는데  말이다.



내  기억의 창고도 정리 안 한 사진 더미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뒤죽박죽이고 어둠 속에 방치되어 있고 나라는 촉수가 닿지 않으면 영원히 무의미한 것들이다. 그중에는 나 자신도 판독  불가능한 것이 있지만 나라는 촉수가 닿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빛을 발하는 것들이 있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마음의 서랍에도  낡은 기억들이, 내 노트에는 수많은 낙서들이  흩어져  있다. 기어이 내 촉수가 닿아야  빛을 발하는 것들은 얼마나 될까? 영원히 무의미한 기억과 낙서로  남기지  않으려면  매일매일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겠지.






이전 02화 3X오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