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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Apr 25. 2022

고양이 날아가다

애도는 남아 있는 서로를 보듬는 일

"나비야, 나비야"

이렇게 부르는 대상은 진짜 나비가 아니라 고양이일 확률이 높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내가 만난 고양이들은 이름이 없었다. 요즘처럼 집에 사는 반려동물아니라 떠돌이 길고양이여서  몇몇 사람들만 애정을 담아 '나비'라고 불렀다. 누구는 쫑긋 올라간 귀가 나비 날개를 닮아서라고  했지만 나는 나비처럼 조용히 다가오고 소리 없이 사라져서 그런 것 같다.


우아한 털, 도도한 자세, 영혼까지 볼 수 있을 것 같은 눈동자 때문에  신비하게 느껴진 건 최근 일이다. 나는  고양이를 정말 무서워했다. 학창 시절 자취방은 골목 끝집에 있거나  키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에 있었다. 컴컴한 밤에 골목을 주름잡는  사람이 아니라 길고양이들이었다. 늦은 밤 귀갓길에  만난 고양이도, 창을 열다 마주친  담장 위의 고양이도 나를 기겁하게 하는  존재였다. 언제나 놀라는 쪽은 나. 비명을 지르거나 말거나 고양이는 태연하게 앉아 있든지 소리 없이 떠났을 뿐이다.


길고양이처럼  어머니의 죽음도 기습적으로 왔다. 2년 전 6월, 어머니는 어지럽다며 누웠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늦은 오후에 소천하셔서  발인까지 고작 이틀도 되지 않는 시간. 이것저것 선택을 요구하는 병원 측과 코로나로 어떤 범위까지 소식을 전해야 하나 허둥거리며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어디에 모시느냐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아버지의  결정으로 고향  선산에 모시기로 했다. 위에는 증조부모, 옆에는  큰어머니, 작은 어머니를 모신  곳이다. 형제들은 납골당이 아니라 다행이라며 위안을 삼았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러 갔더니  아버지는 핼쑥해진 얼굴로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경황이 없어서 생각이 짧았다. 느그 엄마가  예전에 납골당은 무섭고 선산에 묻히는 것은 싫다고 했는데. 내 생각만 했다."

아버지 마음은 이해했지만 장례가 끝나고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이장한다는  것은 너무  막막해서 우리는 모른 체했다.


사십구재가 지나고 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 고속도로 나들목에서 속도를 줄이며  나가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언덕 쪽에서 자동차  보닛 위로 날아들었다. 다행히 창에 부딪히지 않고 반대쪽 풀숲으로 사라졌지만  머리는 쭈뼛 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빠르게 달렸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몇  주 뒤에는 아버지를 뵙고 돌아가는 길에  내리막길이라 속도가 빨랐는데 어디선가 어린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도로로 뛰어들었다. 하마터면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눈을 감을 뻔했다. 고양이가 반대쪽 차선  너머로 달려가는 모습을 봤으므로 가슴은 쓸어내렸지만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한참 동안  우두커니 있었다. 계속되는 고양이 기습에  오싹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사십구재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이 이승에 머물다 떠나는  에  치르는 의식이다. 돌아가신 지 두 달이  지났으나  왠지  어머니의 영혼이 고양이  안에 들어가 이승을 헤매는 건  아닐까 혼자 끙끙 앓았다.


내가 앓고 있는 동안 아버지도 점점 더  야위어 갔다. 불편한 마음에 자주 산소에  다녀오셨다.

"지난번 산소에 갔더니  서늘한데 나비가  날아다니더라."

아버지는  이장할 장소를 찾고 있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다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라 부동산 사이트도  들어가 지만 어느 지역, 어떤 자리가 좋을지  막막했다. 좀 괜찮다 싶은 곳을 발견해도 주소만 가지고 산에서  자리를 찾는 것은 쉽지 다. 남편은 답답한 심정을  가까이 사는 이종사촌형에게  털어놓았다. 사촌형은  아들이 없는 외조부모 산소를 자신이 돌보고 있는데 거기 자리가 있으니 모셔도 좋다고 했다.


"장인어른, 장모님 산소는 내가 알지. 거기는 볕도 잘 들고 좋아. 느그 엄마 고향집과도 가까워."

어머니 돌아가신 후 처음으로 아버지가 웃으셨다. 이제는 잠도 푹 잘 수 있겠다고  했다.


이장할 날짜를 받아 놓고  그동안 맘고생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거금도로 여행을 갔다. 10월 말인데 남해를 품고  있는 섬은 봄날처럼 따뜻했다. 적대봉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다녀오니 아버지  눈시울이 또 붉어져 있다.

"나비다. 저번에 산소에서 본 나비랑 비슷허다."

"어머니가 아버지 따라왔나 봐요."


소리도 없이 나비는 훨훨 푸른 바다 쪽으로 날아갔고, 그 뒤로 고양이의 기습은 없었다. 요즘  산책 길에 만나는 길고양이를  는 다정한 눈길로  바라본다. 이제는 무섭다기보다 굶주리거나 자동차에 치이지는 않을까 안쓰럽다.


식목일을 앞둔 4월 초, 어머니가 꿈에 나왔다는 남편 말을 듣고 산소를 찾았다. 술 대신  어머니 좋아하시던  바나나 우유랑 사과, 소나무 한 그루를 사가지고  갔다. 죽음의 공간이지만 남은 사람들에겐 치유의  공간, 안식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마른풀과 흙을 삽으로 퍼내니  속에는 붉고 촉촉한  흙이 있다.  건강한 땅에  소나무를 심고 생수 두 병을  뿌렸다. 남편은  심은 소나무를 가리키며  자신의  마지막 소풍 자리라고 했고, 나는  근처 배롱나무를  가리키며  예쁜 꽃나무 아래는 내 자리라고 했다.


어쩌면  애도는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야 시작하는 것 같다. 떠난 사람을 천천히  일상 속에서 그리워하는 일.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슬픈 마음을 보듬는 과정. 바나나 우유를 나눠 마시고  일어나  툭툭 엉덩이를  털었고  슬픔도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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