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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툰자 May 31. 2021

작고 시시해 보이지만

<두근두근  내 인생>


아이는 태어난 지 100일이 되도록 소리에 반응이 없었다. 일부러 자는 아이 머리맡에서 기침도 해보고,  쾅 소리가 나도록 문을 세게 닫아도 모르고 잤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능력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듣지 못하면 말을 배울  수 없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미치도록 불안하고 무서웠다. 아이가 들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것 같았다.


백일이 지난 어느 날, 서울서  친구가 내려왔다. 친구의 일곱 살 된 아들이 장난감 바구니를 쏟았는데 우리 아이가 깜짝 놀라는 걸 친구가 봤단다. 나는 믿지 않았다. 우연히 그 소리와 아이의 놀란 모습이 겹쳤겠지 했다. 그래도 희망을 붙잡고 싶어 다시 장난감들을 촤르륵 쏟았는데 정말 아이가 반응을 보였다.


남들보다 뒤늦게 소리를 얻어서 그런가 둘째는 소리에 예민하고 소리를 좋아했다. 돌이 지난 무렵부터는 하루에도 수백 번 엄마를 불렀다. 첫째가 '엄마'라고 처음 소리를 만들었을 때는 기쁘고 좋았지만 둘째의 '엄마'는 기적 같았다.


듣고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물론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걷고 뛰는 것까지 모두가 대단한 재능이었던 거다. 둘째가 소이증으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몰랐다.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이 재능이란 걸.


소이증은 태아 초기에 귀를 형성하는 조직이 덜 발달되어 초래되는 기형으로 한쪽 또는 양쪽 귀가 정상보다 훨씬 작고 모양이 변형된 것을 말한다. 1000명 당 한 정도가 소이증이라고 한다.


이상하게 관심이 생기면 잘 보인다. 학원을 운영할 때는 학원과 학원차들만 눈에 띄더니 1000명 중 한 명이라는데 소이증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을 마주칠 때 대부분  눈, 코, 입을 보는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귀까지 보는 모양이다. 소리를 들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자랄수록 귀 모양에 대한 걱정도 커졌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헤어스타일은 언발란스였다. 귀가 작은 오른쪽은 머리를 길게 해서 가리고 왼쪽은 시원하게 귀를 드러내는 모양으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용실 가기를 너무 싫어해서 없는 솜씨로 내가 머리를 깎아주거나 장발로 지내기도 했다.


미용실에 다니면서 내가 설명하기도 전에 아이는 자신의 귀를 미용사에게 설명하며 언밸런스 머리를 주문했다. 내가 내 몸 안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게 귀였다. 눈에 띄지도 않는 귀보다 잘 보이는 눈이나 코가 더 예뻤으면  하고 불평했는데. 뗄 수만 있다면 내  예쁜 귀를 아이에게 붙여주고 싶었다.


어느 날,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온 아이가 "엄마, 민이형 귀도 나랑 똑같다" 그랬다. "어떻게 알았어?" 물었더니 "형들이 민이는 귀가 작다 그러길래 나도 그래" 하면서 서로 보여줬다고. "그게 끝이야?"라고 니 그렇다고 했다. 한시름 놓았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용실을 갈 때 말고는 큰 불만이 없었다. 친구들이 놀렸다고 울고 온 적도 없고 가끔 학년초에 새 친구들이 물어보면 설명하기가 좀 귀찮다고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중1. 사춘기 정점에 도달한 소년은 공부보다 외모가 중요한 법. 아이는 지금까지 한 번도 성형수술 얘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얼마 전  병원에  예약하라고 했다. 귀 빼고 다 멋있는데 귀가  문제라고. 나는 살부터 빼는 게 어떠냐고 코와 얼굴 턱선이 살아나 귀는 신경안 쓸 거라고  무심하게 말했지만 가슴은 쿵하고 내려앉았다.


성형수술을 위해서는 소이증보다 무이증이 낫다는 블로그 글을 보고 속상했다. 차라리  오른쪽 작은 귀가 없었더라면 수술이 쉬울 텐데. 그러다 화들짝 놀랐다. 지금까지 그 작고 작은 귀가  해낸 일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아이가  4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안경 오른쪽 다리가 그 연약한 살점에 의지하고 있고, 지금은 마스크 까지 올라가 있지 않은가. 작고 시시해 보이지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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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아름이를 만나고  둘째와 나의 시간을 돌아봤다. 조로증을 앓는  아름이는 온몸이 아프지만 마음은 건강한 아이다.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아름이는 부모에게 말한다.

 "가끔 궁금했어요. 엄마랑 아빠랑...... 내가 병들어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그런 나를 사랑하지  못할까 봐 두려우시진  않았을까."


둘째가 태어났을 때 나 두려웠다. 그때  내 나이는 아름이 엄마가 아름이를 낳았을 때보다   배 이상 많았지만  마음은 열일곱 살 엄마보다  어렸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수술하지 않아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수술한 뒤에도 자기가 세상에서 젤 멋있다고 계속  잘난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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