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둥’, ‘꺄하하하-’, ‘또롱 또롱’,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 ‘빠칭, 빠칭’
그날 오후는 유독 귀가 따갑도록 시끄러웠다. 북 치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실로폰 소리, 기관총과 칼 소리를 흉내 내는 누군가의 끊임없는 의성어 소리. 마치 소리가 송곳이 되어 귀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보육교사에게는 수많은 직업병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 중 소리에 대한 문제는 난청이나 청력 저하로 나타난다. 동료 교사 중 두 명이 *메니에르병을 앓고 있다. 나 또한 어린이집에서 다년간 일하며 청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청력이 떨어졌어도 시끄러운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짜증 섞인 목소리로 ‘너희들 왜 이렇게 시끄럽니, 너희가 내는 소리가 다른 층까지 다 들려’ 하며 내가 학생 때 선생님들에게 들었을 법한 훈계를 했다. 아이들은 순간 ‘네’ 하며 조용히 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곧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떠들며 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마저 거슬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음역이 높아서 더욱 귀에 꽂힌다. 가장 거슬리는 것은 총이나 칼 소리를 의성어로 내며 크게 외치는 소리다. 마치 소리를 크게 내는 어린이가 가장 강한 어린이라는 규칙이 있는 듯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진다.
시끄러운 소리를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들뿐인가보다. 소리들의 한 가운데에서 어쩌면 가장 큰 소리들을 고스란히 듣고 있을 어린이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애들이 저렇게 좋아하면서 노는 걸 말릴 수도 없고…’
어른의 귀가 조금 아프다고 해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을 말릴 수는 없다. 게다가 이렇게 웃으며 즐거워 하는데 내가 흐름을 끊어서야 되겠는가. 참아보긴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여 예민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환절기가 되어 아픈 아이들이 많아지고 코로나가 걱정되어서, 가족이 자가격리를 하게 되어서…, 여러 이유로 결석하는 어린이가 많아지자 오늘은 시끄럽던 교실이 민망할 정도로 조용했다. 가장 목소리가 컸던 아이 한 명은 코감기에 심하게 걸려 오늘따라 기운이 없고 조용했다.
‘쓱쓱쓱’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소리와 비닐 옷을 입은 어린이의 옷에서 나는 마찰 소리까지 다 들릴 정도였다. 어색한 고요 속에 한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편지에요.”
편지에는 귀여운 그림과 함께 ‘선생님 미안해요’라고 쓰여있었다. 맥락도 없고 편지의 형식도 무시한 짧은 문장이었지만 편지를 보자마자 가슴이 철렁하고 울리게 되는 힘이 느껴졌다. 이 아이가 나에게 미안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착한 아이가, 세상의 어떤 것에도 해를 가하지 않을 작고 여린 아이가. 나는 아이에게 ‘선생님한테 뭐가 미안한데?’ 하고 묻고 싶었지만 죄책감을 고백하는 것이 힘겹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어른과 어린이가 같으리라 생각해서 구태여 묻지 않았다. 다만 지난날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예민해졌던 내가 훈계한 말을 듣고서 이 아이가 오랫동안 자책을 했던 걸까.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이를 꼬옥 안아주는 것으로 ‘다 괜찮아, 그게 뭐가 되었든’ 이라는 말을 대신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운 교실이 싫었는데 이제는 조용한 교실이 싫어졌다.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생동감이다. 지금 교실에는 생동감이 없다. 교실이 조용해졌다면 그건 아이들이 선생님이 하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점점 소리를 죽인 탓이다. 아파서 결석한 아이들,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인 아이들 모두 교실로 데려와 시끄럽게 떠들며 즐겁게 놀라고 격려해주고 싶어졌다. 어쩌면 거리두기 인원제한과 층간소음으로 아이들이 마음껏 모여 뛰놀 수 있는 곳은 교실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텅 빈 교실은 아이들이 돌아와 갖가지 소리로 채워주길 기다리고 있다.
*메니에르병: 발작성으로 나타나는 회전감 있는 어지럼증과 청력 저하, 이명, 이충만감 등의 증상이 동시에 발현되는 질병으로 시끄러운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지속해서 받는 사람은 메니에르병에 취약하다고 알려져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