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땜미 Oct 09. 2022

친구니까요

특수보육교사로 일하다 보면 많은 어린이를 만나게 된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아픈 손가락은 있다. 나의 아픈 손가락은 동주다. 동주는 자폐성 장애를 진단받은 장애아인데 우리반 아이들 중 가장 장애 정도가 심하다. 동주는 자발적으로 언어 표현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반향어를 주로 말한다. 말을 잘하지 못하고 6살의 나이에도 아직 기저귀를 하는 유일한 친구지만 비장애아들은 동주를 절대 차별하지 않는다(우리반에는 16명의 비장애아와 3명의 장애아가 있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어린아이 취급을 하거나 돕지도 않는다. 그냥 말을 잘 하지 않는 특징이 있는 친구로 받아들이고 어울려 생활한다.


동주의 아버지는 최근 내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동주를 데리고 동네 놀이터에 갔다가 우리반 비장애아 나연이를 만났는데 내심 친구들이 동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던 그는 나연이에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동주가 말을 잘 못 하는데… 같이 놀기 힘들지 않니?"


나연이는 이렇게 말했다. 


"동주가 말을 못 하면 제가 대신 말해주면 돼요. 말을 안 하면 제가 먼저 말 걸면 돼요"


이 말을 듣고 동주의 아버지는 놀이터에서 울었다고 한다. "6살 아이가 저보다 더 대단한 생각을 하고 있네요. 아이들을 이렇게 잘 가르쳐 주셔서 선생님께도 감사합니다."라며 나에게 연신 감사를 표하셨다.


모든 아이는 다정하고 배려 깊다. 나연이가 그런 말을 했다면 내가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우러난 것일 테다. 그 감사는 내가 아닌 나연이가 온전히 받아야 할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나연이가 갑작스럽게 요란을 떨며 나를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동주 좀 보세요!"

평소처럼 동주가 장난감을 입에 넣었거나 교실 밖으로 뛰쳐 나갔나 보다 하고 왜 그런지 물었더니 나연이가 더욱 흥분하며 말했다.

"동주가 말을 했어요! 자기 이름을 말했다고요!"

나연이가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동주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의 이름을 말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동주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한 뼘 더 성장했구나… 대답하지 않는 동주에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어준 아이의 가족들과 교사들, 특히 나연이를 비롯한 비장애아 친구들의 덕분인가보다.'

나는 놓치지 않고 동주의 성장을 지켜보고 교사에게 알려준 나연이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이 모여들어 동주를 둘러싸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와~ 동주가 말하는 거 처음 들었어"

"아니야, 나는 어제 '해줘~'라고 말하는 거 들었어"

"우리 이제 동주랑 역할놀이도 할 수 있는 거야?"


어린이들은 친구가 못 하는 것이 있을 때 배척하지 않고 끈기있게 기다리다가 친구가 성장하는 순간 진심어린 축하를 보내준다.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또 한 가지 배운 좋은 마음가짐이다. 어린이가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주며 나 또한 자라고 있다.


*반향어: 자폐증(autism)의 전형적인 한 증후로 자폐아는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한 연령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말을 걸면 그대로 되받아 말을 하므로 의사소통에 장애가 된다.

이전 03화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줄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