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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Aug 05. 2023

오늘만 여는 미용실

다음이 기다려지는 이유

우리 동네엔 미용실이 없다. 미용실에 가려면 읍내로 나가야 한다. 확실히 도시에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미용실을 찾아 읍내로 나가야 할까?


엄마는 정희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바로 이모에게 출장미용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동네이웃인 정희이모는 왕년에 왕성히 활동하시던 미용사다. 다들 다리 밑으로 모였다.


후끈후끈한 더위를 피하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곳. 오늘만 여는 미용실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 참고로 여긴 폭염경보가 지속되는 중이다. 같은 전라북도인 부안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청소년들이 더위로 잼버리대회를 중도포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웃동네는 아니지만 절대 남일 같지 않은 이유다.


이모의 미용가방엔 미용가운부터 미용가위, 빗, 스펀지까지 없는 것이 없다. 아빠가 파란 간이의자에 앉아계셨다. 아빠의 머리카락이 훌쩍 길더라. 이모가 한 달마다 커트를 해주기로 약속하셨단다.


아빠는 본인 머리카락이 많이 길었다는 말 대신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말했다. 이런 뜨거운 요청으로 오늘의 미용실이 열린 것이다. 이모의 손길이 닿을수록 아빠의 머리스타일은 말끔해졌다. 마법을 부린 듯하달까.


아빠의 커트가 끝나고 미용실이 닫히는 줄 알았다. 그때 엄마가 파란 간이의자에 바통터치하듯 앉으신다. 이모가 커트해주시는 동안 옛날 얘기를 나눴다. 기억에 남는 건 엄마가 오빠가 갓난아기일 때 열심히 굴려서 두상을 예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기 두상을 메주처럼 매만지는 게 효과가 정말 있었는진 알 수 없지만.


정희이모 덕분에 엄마아빠 모두 깔끔한 헤어스타일을 얻었다. 이모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친구들 머리카락을 잘라줬다고 한다. 그때부터 주변을 챙기고 미용에 흥미를 느끼신 것이다. 왕년엔 방배동 미용실에서 활동하셨다고도 했다. 미용실은 없지만 솜씨 좋은 미용사인 정희이모가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시골에 살면 도시엔 당연하게 있는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 쿠팡의 로켓프레시를 주문할 수 없고, 배달앱도 작동하지 않으니까. 그동안 전혀 안 쓰던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을 처음으로 시골 와서 써봤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저 멀리 대전허브에서 다음날 새벽에 포장해서 배송해 주는 것에 감사하더라. 도시엔 너무 많아서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재발견하는 순간이었다.


오늘도 정희이모가 없었다면 우린 단골미용실을 찾아 몇 번을 헤맸을 것이다. 특별히 미용실을 열어준 이모에게 감사한 하루다. 다시 열릴 미용실을 위해 바리깡을 주문했다. 다음 미용실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아마도 아빠가 한 달이 되지 않았냐고 엄마에게 물을 때쯤이 아닐는지. 눈치껏 바리깡을 잘 보이는 곳에 챙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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