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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Sep 17. 2023

제2의 고향

낯설다 새 건물

부산에 왔다. 지난 4월 이탈리아 바리에서 룸메로 만나 친구가 된 레미가 한국에 놀러 왔기 때문. 한국을 좋아하는 친구라 언젠가 막연히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섯 달만에 그 일이 성사되다니 꿈만 같다.


마지막 방문이 언제였더라. 아무런 연고는 없었지만 로망을 가득 품고 부산에 내려와 대학을 다녔다. 졸업하고 부산역 근처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졸업한 것이 2017년. 8년이나 시간이 흘렀다니. 양쪽에 이어폰 끼고 부산역을 나오며 아련한 추억에 잠겨있을 때 이를 깨는 누군가의 목소리.


어느 나라인 지 모르겠지만 외국인 청년이 유창한 한국어로 지하철 어디서 타냐고 묻는다.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여러모로 고마웠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질문하다니. 누가 봐도 빵빵한 배낭이 여행자 같은 행색인데 나를 부산 현지사람으로 봐주다니. 마치 누가 봐도 나이 있어 보이는 손님에게 술집 사장님이 주민등록증 검사해 준 기분이랄까.


이런저런 설명보다 나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니 따라오라고 했다. 나도 오랜만에 부산을 와서 건물이 새 거라 헷갈린다고 고백했다. 덕분에 신뢰도를 약간 잃었지만 어쨌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일이 힘들었는지 나를 계속 따랐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표지판은 이렇게 생겼다고 멀리 있는 확신의 입구를 가리켰다. 나의 힌트를 듣고 집중한 청년은 그보다 가까운 입구를 찾아냈다. 휴 다행이었다. 건물은 공사해서 새 옷을 입었지만 위치는 그대로여서.


졸업하고 부산에 정착한 대학친구 희라가 부산역 주변 카페를 추천해 줬다. 새로 개업한 신상카페는 또 누구보다 빠르게 와줘야 하는 법. 부산역 반대편으로 넘어와 조금 걸어오니 바로다.


어랏 손님이 아무도 없더라. 테이블이 다섯 개밖에 없는 크지 않은 공간에 비밀스럽게 초대된 기분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휘낭시에를 맛별로 포장을 부탁했다.


작년에 휘낭시에 만들기 원데이클래스를 들어서 더 반가웠다. 휘낭시에는 금괴라는 뜻이 있다. 친구에게 금괴뭉치를 선물할 생각에 혼자 신나서 미소가 지어졌다.


즐거운 마음을 품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제2의 고향에 금의환향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환향한 기쁨이 읽는 당신에게도 전해지기를. 각자의 제2의 고향을 잠시나마 떠올려보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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