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운이 남는 맛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첫 도쿄 방문인 만큼 일부러 맛집을 찾지 않았다. 그저 발길 닿는 곳에 운명처럼 마주하길 바랐다. 말하자면 자만추(자유로운 만남 추구) 도쿄맛집이랄까.
도쿄여행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딱 1주일째. 도쿄맛집의 유통기한에도 있다면 집으로 돌아온 바로 지금일까. 기억만큼은 여전히 도쿄에 있는 것처럼 생생한 맛집 네 곳의 자취를 따라가 보자.
1. 요즘 도쿄 연인들의 파스타집
시모키타자와 동네 구경을 가고 싶었다. 우린 도쿄 메트로패스로 다녔기 때문에 시모키타자와에서 제일 가까운 요요기우에하라역에서 내렸다. 시모키타자와는 오다큐선이라 패스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
요요기우에하라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얻어걸렸다는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골목골목이 매력적이었다. 저 언덕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호기심이 들더라.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랄까.
가장 눈에 띈 것은 파스타집. 도쿄의 요즘 연인들이 줄지어 서있는 게 아닌가. 로컬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러 오는 맛집이라면 무조건 맛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메뉴판이 다 일본어인 것은 개의치 않았다. 파스타 사진이 벽 한편을 다 채우고 있었기 때문에 보기에 맛있어 보이는 걸 시켰다. 대기줄이 짧아서 금방 들어갔다.
파스타를 기다리는 잠깐동안 이곳에 온 것을 기억하고자 친오빠랑 사진을 찍었다. 사장님이 면을 삶다가 멈추시고 우리 사진을 찍어주셨다. 어디가 아프신지 코에 호스를 꽂고 일하시는데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감동했다.
역시 줄 서는 맛집엔 이유가 있다. 1인 1 파스타를 먹었는데 풍성한 재료가 가득해서 꾸덕하고 녹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파스타 종류가 많아서 다른 메뉴를 먹으러 또 가고 싶어 진다.
*위치: https://maps.app.goo.gl/UsnV5ST6ZT2Dt91y7?g_st=ic
1 Chome-33-17 Uehara, Shibuya City, Tokyo 151-0064 일본
maps.google.com
2. 엄마가 차려주신 듯한 정갈한 일본정식집
나카메구로역 근처를 걷다가 홀린 듯 들어간 식당이다. 손글씨 일본어 메뉴판을 만나서 좀 당황했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서 구글 번역기가 열일해 준다.
해산물이 매일 바뀐다고 하니 궁금증이 생겼다. 해산물 정식과 돼지고기 생강구이 정식을 주문했다. 밥, 국, 반찬 정갈한 구성에 집밥을 먹는 듯한 기분이다.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으면 빈 그릇으로 보답하고 싶어 진다. 그릇을 설거지하듯이 밥 한 톨 남김없이 깔끔히 비웠다. 사실 집에서는 막상 이렇게 차려먹는 게 일인데 이 식당을 집 앞으로 옮겨오고 싶었다.
*위치: https://maps.app.goo.gl/romVZdkgBtCieRaX7?g_st=ic
3. 이 구역 매운맛 짱은 누굴까 궁금한 라멘집
공짜를 좋아하면 대머리가 된다던데 캐럿타워가 무료전망대라고 해서 산겐자야로 향했다. 도쿄 메트로패스로 갈 수 없는 노선이라 추가요금을 냈다. 따로 표를 사지 않고 역을 빠져나올 때 역무원에게 현금으로 계산하면 되었다.
외곽지역에 있는 전망이라 그런지 특별한 게 없었다. 밤 11시까지 운영되어 동네사랑방 느낌이 강했더라. 수다쟁이 주민분들로 가득했다.
구경이 망했을 땐 맛있는 음식으로 풀어야 한다. 근처에 라멘집이 있어서 향했다. 벽 한편이 상장으로 도배되어 있더라. 자세히 살펴보니 매운맛라멘 명예의 전당이었다.
매운 라멘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일본에도 맵부심 있는 사람들이 많구나 반가웠다. 물론 우린 맵찔이라서 가장 안 매워 보이는 라멘을 주문했다.
차슈가 두툼해서 라멘을 싸 먹기에 좋았다. 밤 9시가 넘어서 먹는 야식이었지만 맛있어서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역시 맛있으면 0칼로리다.
참고로 매운 라멘은 6단계까지 있고 최고단계인 천국은 굉장하게 맵다고 한다. 매운맛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명예의 전당 도전해 보는 것도 하나의 도쿄여행의 재미가 되겠다.
*위치: https://maps.app.goo.gl/SqMyJeNQ6hXPkHLg8?g_st=ic
4. 생맥주를 부르는 돈가스집
거리에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많이 앉아있어서 호기심에 향한 곳이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매번 기다리는 줄이 있는 것이 인기 있어 보였다. 의자가 있어서 기다림이 힘들지 않고 캐리어 따로 둘 곳을 마련해 둘 정도로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
밥과 국이 포함된 런치메뉴 시간이라 로스카츠와 히레카츠 세트를 주문했다. 주문하자마자 만들기 시작하신다. 오픈주방이라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이 집은 특별히 돈가스의 풍미를 더할 대나무 숯 소금과 고추냉이가 준비돼 있다. 소금과 고추냉이를 조금 찍어서 한 입 베어무니 입 안에 육즙이 팡팡 터졌다.
분명 기름에 튀겼는데 느끼하지 않고 깔끔해서 신기했다. 기어코 생맥주(나마비루)를 주문하고야 말았다. 술을 즐겨 마시지 않는데도 절로 생맥주를 부르는 맛이랄까. 2대째 운영 중이라는데 계속 가업을 이어주셨으면 좋겠다.
*위치: https://maps.app.goo.gl/4EPGDbcFvQ5SbsVf8?g_st=ic
준비 없이 만난 맛집 덕분에 첫 도쿄여행의 감동이 진하게 남았다. 물론 이 식당들은 다 현금으로만 계산 가능하니 지폐를 두둑이 챙겨두자. 한국에 돌아와도 생각나는 게 진짜 맛있었구나 싶다. 결국 이 맛도 기억 속에서 잊히겠지.
이번 도쿄여행에서 다녀온 블루보틀 나카메구로점이 111월 19일에 폐업했더라. 마을에서 눈에 띄는 집모양의 건물로 아기자기한 맛이 좋았는데 충격적이었다.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99% 다크초콜릿을 삼킨 듯이 씁쓸했다.
나의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맛집이 오래오래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란다. 혼자 알고 있긴 너무나 훌륭해서 다들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하시면 좋겠다. 나도 두 번째 만남을 손꼽아 기다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