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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Feb 05. 2024

부산에서 러시아음식을 먹게된 사연

아는 동네 완전 새롭게 만드는 법

 이번 부산여행은 호스텔에서 3박을 묵었다. 학교를 부산에서 다녀서 혼자 호스텔에 묵은 적은 처음이었다. 나름 외국인이 많이 오는 부산이라 숙소에서 글로벌한 분위기를 상상했다. 겨울철이라 그런지 비수기라 모든 손님이 한국인이더라. 오히려 좋아.


 같은 방 투숙객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늦깎이 영어를 배운 아주머니가 외국인들과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일부러 국내여행 다니며 호스텔에 묵는다는 이야기. 호스텔에 입장 나이제한이 있어 신분증 제시를 요청받았다는 이야기. 한국어로 쉽게 소통할 수 있어선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부산역 근처 맛집 정보를 공유하다가 러시아식당을 추천받았다. 만원 미만으로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단다. 그 길을 걸을 때마다 그 세상이 궁금했지만 혼자선 굳이 낯선 곳에 용감하게 시도하지 않았다. 이미 미지의 세계를 만족스럽게 경험해 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다시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부산역 근처에 러시아음식점이 꽤 여러 개 있다. 러시아음식점 추천해 주신 분은 이 동네 러시아음식점을 이번에 여러 곳 방문하셨단다. 직접 가보고 문을 열어봐야 실제 모습을 알 수 있어 진입장벽이 상당한 편이라, 매우 귀중한 경험이다.


 한 러시아음식점을 방문했는데 문을 닫았다고 한다. 분명 온라인에선 영업하는 날이었는데 말이다. 온라인에 정보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다.


 아쉬워서 돌아서려는데 같은 처지의 손님을 마주쳤단다. 모르는 사이기에 각자 즐거운 식사 하시라고 짧게 인사하고 헤어졌다고. 근데 두 번째로 찾은 러시아음식점에서 다시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재밌는 우연이 반복된 하루. 똑같은 날 러시아음식을 먹고 싶었던 두 사람이 가는 발걸음마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똑같은 선택을 한 것이 현실적이면서도 한 편의 영화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부산역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가 같이 점심 먹자고 해줘서 추천받은 러시아음식점 키키카페에 갔다. 차이나타운 골목 끝에 러시아음식점이 있다. 둘 다 계획형이라 문을 닫았으면 어쩌지 둘이서 걱정을 잔뜩 했다. 언제 열고 닫는지 인터넷에 정보가 없기 때문.


 다행히 영업 중이었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매일 아침 10시부터 밤 22시까지 12시간을 장사하시더라. 난생처음으로 부산에서 러시아음식을 먹어야겠다고 큰 용기 냈는데 헛걸음할 일이 없어서 굉장히 다행인 부분.


 몇 안 되는 블로그 후기를 보면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단 이야기가 있어 살짝 긴장했다. 막상 메뉴판을 보니 러시아어 60%, 한국어 40%라 안심했다. 맞이해 주신 사장님도 한국어를 잘하셔서 걱정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부산에서의 러시아음식이라니. 볶음밥, 만두, 꼬치를 넉넉히 주문했다. 손님 중 한국인인은 우리뿐이었다. 양은 푸짐하고 맛은 풍부했다. 혜자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꼬치에서 고기를 빼내다가 테이블에 흘렸다. 사장님은 그걸 보셨는지 센스 있게 집게를 가져다주셨다. 그러곤 사용법을 알려주셨다.


 간이 잘된 음식과 기분 좋은 친절에 즐거운 식사를 했다. 부산에 4년 넘게 살면서는 보지 못한 부산의 새로움을 발견한 순간. 나름 부산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다. 내가 아는 것들만 아는 것임을 깨달았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이국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니.


 설거지하듯 깨끗이 비우고 옆 자리 테이블을 따라 그릇을 모두 합쳐놓았다. 러시아에선 밥을 다 먹고 그릇을 합쳐놓는 게 식사예절인가 싶었다. 러시아친구가 없어서 사실인지 아닌진 모른다. 음식점 사장님께 물어보고 올걸. 글을 쓰면서야 생각난다.


 한동안 잊고 있던 러시아 여행의 추억이 떠올랐다. 코로나 터지기 직전 겨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마트료시카를 사러 갔던 때가 있었다. 진짜 로컬문화를 알고 싶어서 러시아 만두 펠메니 쿠킹클래스에 참석해 다양한 나라의 여행객들과 보드카를 마셨던 추억이 피어올랐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먹었던 음식맛과 같았다. 부산에서도 러시아음식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 부산에서 러시아음식을 먹으며 새로운 세계에 기꺼이 향할 에너지를 충전했다. 러시아여행을 다시 가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국내에서 해외음식을 시도해 봐야지. 그럼 잠자고 있던 나의 내면의 열정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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