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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탱볼에세이 May 25. 2024

[치앙마이 75일 차] 수영예찬

수린이의 하루

월수금 아침 10시엔 수영 강습이 있다. 9시 반까지 수영장에 도착해서 미리 몸을 푼다. 수영장까진 자전거를 타고 간다.


벌써 18번째 수영장 가는 길. 가랑비가 내린다. 요즘엔 비가 하루종일 오락가락 내려서 설마 큰 비가 오려나 걱정되었다.


비는 조금씩 계속 쏟아졌고, 야외수영장 물은 따뜻했다. 오히려 물속으로 들어가면 빗물은 안 맞으니 비는 수영하는데 큰 지장이 없더라. 열심히 배영과 자유형을 연습했다.


수영 강습동안 빗줄기가 굵어졌다. 지난번에 비 많이 온다고 취소했던 나. 세찬 비가 내리는 하늘 아래서 수영하고나니, 비 오는 것이 수영을 못하는 것의 핑계가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수영선생님은 학생이 강습을 원하면 비가 와도 수업을 한단다. 단, 태풍번개 치는 비는 무조건 강습취소라며.


한국으로 귀국이 얼마 남지 않았고, 레슨은 10회권을 이미 지불했다. 남은 동안 수업을 다 들으려면 미룰 수 없다. 덕분에 안 되는 마음속 이유를 무조건 되게 만들더라.


지난 화요일엔 생리가 터졌다. 난생처음으로 탐폰을 사용했다. 덕분에 수요일 수업을 무사히 해냈다. 생리 중에도 수영이 가능하구나 신세계를 맛봤다.


안 해봐서 무서운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수영에 있었다. 수영을 시작한 후부터 두려움을 깨는 맛을 배우는 중이다. 덕분에 또 다른 두려움인 탐폰도 깼다.


이제는 새로운 두려움도 다 깰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수영이라는 벽을 깨니, 다이빙의 세계가 궁금해지고. 탐폰이라는 벽을 깨니, 생리컵의 세계도 궁금해진다.


수영모를 쓸 때마다 자라난 머리카락 길이를 느낄 수 있다. 처음 모자를 쓸 땐 머리카락이 짧아서 모자가 딱 들어맞았다. 지금은 모자를 쓰면 길어진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걸리적거려진 머리카락이 신경 쓰이더라. 즉흥적으로 미용실 가서 커트해 버렸다. 머리카락 무게가 가벼워진 것도 좋지만, 수영모자를 쓸 때 찰떡이라 더 기쁘다.


이제 수영 강습은 2회만이 남았다. 오늘 처음으로 부표 없이 자유형을 연습해 보았다. 아직 오른쪽 팔을 뻗을 때 오른쪽 어깨가 덜 돌아가서 물을 꿈뻑꿈뻑 먹고 있다. 호흡도 조절이 잘 안 되어서 슬로우와 릴랙스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몸이 물에 익숙하지 않아서 한방에 훌쩍 수영동작이 좋아지진 않는다. 그저 한 뼘씩 나아지는 나의 움직임을 발견할 뿐이다. 조금씩 괜찮아진다는 나름의 짜릿한 희열이 나를 팔딱팔딱 움직이게 한다. 남은 동안 최선을 다해서 수영장 레일을 부표 없이 자유형으로 완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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