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시작은 어쩌다
1년 휴학을 하고 학비를 벌기 위해 1월부터 알바를 시작했다.
내가 일한 곳은 어느 세미급 병원 검진센터.
이 당시 주 5일 8시간 + 토요일 반나절 근무해서 월 130만 원 전후를 받았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
학교 다니면서 아무리 알바를 해도 버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130만 원이라는 돈은 내겐 너무 큰돈이었다.
이렇게 큰돈을 그냥 막 쓰기엔 안될 거 같아서 월급의 반이상을 모으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하는 일이 조금씩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해야 하는 일들이 쌓여갔다.
게다가 병원이라는 사회에서 팀장부터 과장 그리고 주임과 함께 총 40명의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게
꽤나 큰 스트레스였다.
정신적, 체력적으로 매일매일 고되고 고됬다.
5월은 버틸만했지만 6월 초부터 시작된 더위는 8월 말이 넘어 9월 초까지 계속되었다.
진짜 너무 덥다.
병원에 있는 부서들을 계속 와리가리하면서 잡무 처리를 했다.
더구나 부서와 부서 간 거리가 좀 있었고 연결통로 없이 밖에서 안으로 들락날락하느라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겨울은 버틸만했지만 여름이 시작했을 때 매일 땀범벅으로 집에 왔다.
일은 점점 쌓여가고 날씨는 미치도록 덥고 체력은 바닥이 나고

내가 나약한 걸까 아니면 오기로 버티고 있는 걸까
나는 결국 목표했던 목돈을 모으지 못한 채 9월에 퇴사를 했다.
알바를 그만두는 데에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그냥 지쳐 있었다.
아 그냥 좀 쉬면 안 되려나.
원래는 1년 꽉 채워서 학비를 바짝 벌고 복학하려 했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한 대로 뜻대로 되지 않더이다.
퇴사를 할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9월 초
결정적인 사건과 함께 쌓여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뭐 대표적으로 알바라는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랄까 :D
당장이라도 '팀장'이라는 사람과 싸울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을'이라 불리했다.
하지만 아마추어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어디서 어떻게 또 만날지 모르는 일이기에
어머니는 늘 말씀하신다. 일을 할 땐 프로처럼 일하라고
팀장과 알바를 관리하는 인사 담당자에게 이만저만한 이유로 퇴사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웃으면서 좋게 좋게 넌지시.
속이 후련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들의 대답은
우선 지금이 월 초이기도 하고 후임자도 구해야 하니까 월 말까지 일하는 걸로.
금방이라도 짐 싸서 나가고 싶었지만 마무리는 좋게 끝내는 게 좋으니
그래 월말까지만 버텨보자.
아니 존버다. 존버.
8개월 정도 돈을 모은 결과 통장엔 700만 원 이상이 있었다.
와 생각보다 많이 모았네.
잠시 생각을 했다.
이 돈으로 학비를 다 내기엔 뭔가 아까운데.. 잠시 머리도 식힐 겸 2주 정도 어디 다녀올까
어차피 다녀와서도 부족하면 남은 기간 동안 또 알바를 하면 되니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지금이 중요하니까.
하지만 이미 어디 갈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기야 첫 여행 후 역마살이 단디 껴서 틈만 나면 항공권을 알아보고 있기도 했다.
130으로 학비를 모아야 했지만 또 어떻게든 떠나고 싶었다.
8개월 간 추위와 더위 그리고 갖은 스트레스를 버텨준 나를 위해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9월 둘째 주부터 인생에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대화가 인간의 지적 활동에 묘약인 것처럼 고독은 인간의 정신활동에 묘약이다. - 에밀 시오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