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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Feb 13. 2019

나보다 더 소중한 너의 내일

시댁과 함께한 괌 여행 #02


 작년 이맘때쯤 에디터가 아기와 함께 괌을 갔을 때에도 기내는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현대에 이르러 커뮤니케이션과 딜(Deal)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에도, 이제 겨우 1 형식을 구사하는 18개월 아기는 불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 24개월 미만이라 유아 티켓 -성인 운임의 10%, 좌석 없음- 으로 굉장히 저렴하게 끊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엄빠의 다리 위에 걸터앉아 4시간 반 동안 쉴 새 없이 버둥대던 아가께서는 내리자마자 괌 공항을 뛰어다님으로써, 좌석 점유를 향한 의지를 내비쳤다. 


2018년도 인천 -> 괌 기내 사진. (좌) 받자마자 찢어버린 대한항공 키즈 선물 / (우) 뽀통령도 소용없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작년과 같은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서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기내에서 가지고 놀 장난감을 많이 준비할수록 심신이 편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준비한 바로 그 기내 준비물 리스트! for baby.




두 돌 아기를 위한 기내 준비물 리스트


1. 색칠공부 + 미니 색연필(12색) = 10분

9:08 PM ~ 9:18 PM 정확하게 10분 동안 흥미를 가지고 몰두했다. 요즘 과일에 푹 빠져있는 지라 특별히 과일 모양이 있는 것으로 샀는데, 몇 번 끄적이다가 최애 과일인 수박이 더 이상 없다는 것에 역정을 냈다.


2. 천 원짜리 스티커 = 간헐적으로 5분씩

색칠공부에 흥미를 잃은 아기 손에 얼른 쥐여준 천 원짜리 칭찬 스티커. 똑같은 모양의 과일 스티커가 10장 들어있어서 계속 꺼내 주기 좋았다. 아이템 하나를 질려할 때마다 손에 쥐여주면 간헐적으로 5분씩 여기저기 붙이며 가지고 놀았다. 에디터 남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몰래 집어넣었던 신의 한 수가 통했다. 후훗! 벌써 15분이나 벌었고, 비행시간도 4시간 20분 중 4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단 15분 만에... 30여 년을 깨우치지 못했던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실천하게 되었다.



3. 스티커북 *2개 = 25분

비타민과 무기질에 빠져있는 독불장군님께서 가장 흥미진진해 했던 과일 채소 스티커북이다. 다른 종류로 2개 준비해서 같이 놀아줬다. '이건 어디 붙일까?' '이건 뭐야~?' 하고 질문형으로 물어보면 좀 더 시간을 벌 수 있다. 


4. 키즈 패드 + 아이클레버 헤드셋 = 1시간

키즈 패드로 뽀로로 영상을 틀고, 요구르트를 입에 물리고서야 기내의 평화가 찾아왔다. 최대한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지만, '미안하다 아가야... 엄마의 한계는 여기까지였어...' 밤 비행기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는 없기에 키즈 전용 헤드셋을 구매했다. 낮은 데시벨로 나와서 아기들 귀에도 큰 자극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귀가 쫑긋해서 귀염 포인트가 상승됨. 


5. 까까, 보리차, 우유/요구르트, 비타민 사탕, 보온병, 일회용 숟/포

평소 잘 먹는 까까로 서너 개 준비하고, 기내에서 마실 물과 우유 요구르트를 하나씩 챙겨 왔다. (출국심사 때 아기 음식이라고 하면 기내 반입이 가능하다.) 이륙 시 귀가 먹먹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타민 사탕도 여러 개 준비해서 이륙 시 먹여줬다. 저녁을 먹지 않고 탑승해서 아기 밥을 미리 보온병에 담아왔고, 일회용 숟가락은 아이스크림 스푼으로 챙겨 왔고 요긴하게 다 사용했고... 부족했다.



기내 준비물이 무겁다 여겨지면, 더 챙겨라. 그걸로 모자라다.




나보다 더 소중한 너의 내일


" 우리 괌으로 이사 가니? "


 여행 전날, 짐을 싸고 있는 에디터에게 남편이 물었다. 20년 넘게 여행을 하며 에디터가 단 한 번도 챙겨본 적 없었던 상비약과 샴푸, 숟가락, 베개... 그 모든 생활 속 작은 짐들이 아기에겐 필요했다. 익숙한 베개, 손 때 묻은 애착 인형, 현지 물먹고 탈이 나면 어떡하나 싶어 챙겨야 했던 보리차와 햇반과 반찬, 응급상황을 대비한 상비약만도 내 화장품 파우치보다 컸다. 어디 짐뿐이랴... 응급 시 찾아갈 수 있는 (한국말이 통하는) 병원도 서너 군데 미리 알아봐 두고 구글맵에 찍어뒀다. 

 살면서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위해 짐을 챙겨본 적이 있던가... 타인을 위한 여행 준비는 고되었지만, 지금의 나보다 더 소중한 것이 아기의 내일이었다. 내일의 아기는 더 웃고, 더 건강하고, 더 많이 먹고, 더 잘 잘 수 있을 거라는 기대... 그 기대감을 챙기는 게 아닐까 싶다.


 + 이삿짐 마냥 챙긴 24인치 캐리어 2개는 여행 일정이 지날수록 빈 캐리어가 되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양하는 에디터는 마지막 날 출국 2시간 전까지 쇼핑으로 그 허전함을 꽉꽉 채워왔다. 진심으로 의도한 바가 아니었음을 밝힌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평온하게 잠들었다.


 에디터의 여행은 with / without baby로 나뉜다. 아기가 없었던 여행에서는 온전히 나를 위한 일들만 가득했다면, 아기가 있는 여행에서는 온전히 내가 아닌 이를 위한 일들만 가득했다. 이번 여행도 시어머니와 아기가 함께 했기에 나에게는 여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큰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환갑을 맞으신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었고, 방법은 내 몸 하나 불사르는 것이었다. 여행 전 준비는 에디터가 했지만, 실제 여행이 진행될수록 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이 프로젝트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며 실무자가 내가 아니게 되었고, 오히려 내가 돌봄을 받는 여행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목적인 시어머니의 기쁨을 달성했으므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 성공한 가족여행이었으리라...



EDITOR. DAHYUN Y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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