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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Aug 23. 2019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우스리스크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 말은 단순하게 역사를 기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이어져온 역사에서 다시금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이 아닐까 한다. 얼마 전 프로그램을 보는데 요즘 10대와 20대에게 개화기 복장을 입고 뉴트로한 분위기의 장소에서 힙하게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윗 세대와 함께 옛날의 모습을 추억할 수 있게 된 건 반갑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괜히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건, 이때의 우리의 근대화의 여명은 너무 더디었고 또한 너무 어두웠던 까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광풍에서 우리나라는 메이지유신을 통해 이미 근대화된 일본에게 맞서 여러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1910년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된다. 이후 독립운동가들은 식민지가 된 조선을 떠나 만주나 간도 그리고 연해주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타지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가늠키 어려우며, 그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을지 상상 이상으로 자명하다. 하지만 제국주의에 반대하고 저항한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의 역사에 떳떳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가 이후 여러 지정학적 사건들에 의해 알려지지 못한 채 묻혀버린 안타까움은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서 성큼성큼 다가오는 더위를 피해 그리고 요즘 다시 재조명 되고 있는 역사를 만나러 블라디보스톡의 우스리스크로 떠났다.


고려인문화센터에 자리하고 있던 최재형 관련 도서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각지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하나로 뜻을 모으기로 결의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루고자 하는 바는 하나였지만 다양한 의견과 독립에 대한 각자의 노선이 있었던 만큼 하나의 통일된 정부를 세운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하나의 공동 목표를 위해 임시정부를 세우고 각 구성원을 정하게 되는데, 이때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으로 선출된 사람이 바로 우리에게는 그다지 알려지지 못한 최재형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양반가의 자식도 평민의 자식도 아닌 노비와 기생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 시절 노비라함은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지 못하는, 말과 소 같은 가축으로 매매의 대상이 되는 아주 최하층 신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신분을 비관하기보다는 러시아 말을 배워 선원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그 돈은 개인의 영달이 아닌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했다. 또한 안중근을 도와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저격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지만 결국 일제에게 붙잡혀 사살되었다.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기념관


이후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가 활동했던 지역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이었기 때문에 독립 이후 냉전의 역사속에서 해동되지 못하고 머물다가 지금이 되어서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에는 일제에게 잡혀 가기 전까지 그가 생활했던 집이 남아있었는데, 얼마전 새단장되어 최재형 기념관으로 재탄생되었다. 방송에서 볼 때 만해도 폐허 같은 느낌이었는데, 직접 방문했을 때는 어느새 깔끔한 느낌의 기념관이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기념관으로서의 전환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그곳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들의 힘이 컸다고 한다.


블라디보스톡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문화센터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에는 우리 민족이 1935년 강제 이주를 당한 통한의 역사가 남아있다.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는데, 이때 굶주림과 추위 등 가혹한 환경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목적지인 중앙아시아에 도착해 아무것도 없는 맨손으로 토굴을 짓고 추위를 견뎌가며 벼농사를 시작한 이후 노동영웅 훈장을 받을만큼의 결과를 이루어 낸 자랑스러운 고려인들의 문화센터 또한 우수리스크에 자리하고 있으니 함께 둘러보기를 권하고 싶다.


고려인문화센터에 위치한 의병 류인석 비석


마찬가지로 고려인문화센터에 같이 자리한 안중근 의사 비석


이렇게 잊혀진 역사를 다시금 발견하고 보존하는 것 그리고 이후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지금의 우리 세대가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닐까.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했으면서 왜 독립운동을 했는가, 그때의 독립운동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이 일제 강점의 36년이 부당했다는 것을 증명하며, 또 저항했기 때문에 그 강점의 역사를 우리 민족이 원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역사는 되풀이되어 흐르고 있다. 우리가 일본에게 지난 과오에 따른 사과를 원하는 것도 그들이 계속적으로 미안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잊혀지기만을 바라는 그들에게 말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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