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춤으로 채워진 도시, 스페인 세비야
몇 년 전, 론다로 이동하는 중에 일정이 맞지 않아 세비야에서는 점심식사만 하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장과 골목 풍경에 나는 멀지 않은 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라멩코와 투우를 제외하고는 정보가 별로 없었지만 복잡한 구시가 골목은 시간을 넘어 중세의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 같았다.
늦은 점심시간이었지만 노천 카페는 빈자리가 없었다. 외국인 틈에 무심한 듯 끼어 앉아 파스타와 와인을 먹고 싶어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한참을 기다려 자리를 잡았다. 내리쬐는 볕으로 눈도 뜨기 어렵고, 파스타는 그저 그런 맛이었지만 내 주변을 가득 채운 여행의 공기가 모든 것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세비야의 시내도로는 일방통행과 공사 구간이 많아 더 복잡했다. 오로지 네비게이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지도상으로 가까운 거리인데 일방통행 도로 때문에 돌아서 가느라 거의 한 시간이 걸려 세비야 대성당 근처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세비야를 찾은 이 순간, 대성당이 보이는 골목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골목을 돌아서면 대성당이 펼쳐질 곳에서 걸음이 느려졌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대상이 벽 뒤에 있는데 그곳으로 나서는 것이 어려웠다. 만나고나면 마지막일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마침 절정을 앞둔 공연의 음악처럼 가슴을 긁어내리는 거리 연주자들의 슬픈 멜로디가 가슴께로 스르륵 밀려 들었다.
기타 연주가 시작되고 음의 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남녀 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걸어나와 멈춘 듯 섰다. 먼 곳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애틋한 눈빛과 작은 손놀림이 플라멩코의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려 했던 내 마음을 가져가 버렸다. 바닥을 구르는 발놀림에 멍하니 그들의 춤에 빠져드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둘의 춤에는 슬프다, 애절하다, 감동적이다 등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것이 있었다.
잠시 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엔 남자만 서 있었다. 기타 연주에 맞춰 남자가 발을 구를 때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촛불이 흔들렸다. 모든 공기는 무대 위 남자의 발 끝에 모이는 것 같이 팽팽했다. 기타와 발 구름이 빨라질수록 좁은 무대가 점점 거대한 공간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