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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고 TTGO Sep 26. 2019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와야만 할 것 같은 여행

노래와 춤으로 채워진 도시, 스페인 세비야

#1

몇 년 전, 론다로 이동하는 중에 일정이 맞지 않아 세비야에서는 점심식사만 하고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광장과 골목 풍경에 나는 멀지 않은 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라멩코와 투우를 제외하고는 정보가 별로 없었지만 복잡한 구시가 골목은 시간을 넘어 중세의 어딘가로 데려다 줄 것 같았다.


늦은 점심시간이었지만 노천 카페는 빈자리가 없었다. 외국인 틈에 무심한 듯 끼어 앉아 파스타와 와인을 먹고 싶어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한참을 기다려 자리를 잡았다. 내리쬐는 볕으로 눈도 뜨기 어렵고, 파스타는 그저 그런 맛이었지만 내 주변을 가득 채운 여행의 공기가 모든 것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2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세비야의 시내도로는 일방통행과 공사 구간이 많아 더 복잡했다. 오로지 네비게이션에 의지할 수 밖에 없으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지도상으로 가까운 거리인데 일방통행 도로 때문에 돌아서 가느라 거의 한 시간이 걸려 세비야 대성당 근처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세비야를 찾은 이 순간, 대성당이 보이는 골목에서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골목을 돌아서면 대성당이 펼쳐질 곳에서 걸음이 느려졌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대상이 벽 뒤에 있는데 그곳으로 나서는 것이 어려웠다. 만나고나면 마지막일 것만 같은 묘한 기분이었다. 마침 절정을 앞둔 공연의 음악처럼 가슴을 긁어내리는 거리 연주자들의 슬픈 멜로디가 가슴께로 스르륵 밀려 들었다.





#3

기타 연주가 시작되고 음의 높이가 점점 높아졌다. 남녀 댄서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걸어나와 멈춘 듯 섰다. 먼 곳을 응시하는 두 사람의 애틋한 눈빛과 작은 손놀림이 플라멩코의 순간을 그림으로 그리려 했던 내 마음을 가져가 버렸다. 바닥을 구르는 발놀림에 멍하니 그들의 춤에 빠져드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둘의 춤에는 슬프다, 애절하다, 감동적이다 등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너머의 것이 있었다.


잠시 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엔 남자만 서 있었다. 기타 연주에 맞춰 남자가 발을 구를 때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촛불이 흔들렸다. 모든 공기는 무대 위 남자의 발 끝에 모이는 것 같이 팽팽했다. 기타와 발 구름이 빨라질수록 좁은 무대가 점점 거대한 공간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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