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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Feb 08. 2021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에 매달려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괴로운 습관

'난 사춘기도 없어'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약 5년을 엄마한테 쳤던 멘트이다.

그럼 엄마는,

'배부른 소리 하지 마. 엄마 때도 사춘기가 어딨었어'

이러곤 했다.


그 말이 너무 서운했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도 속상했을 것이다.)


사실 나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괴로운 습관이 있다.


나의 중, 고등학교 시절은 그 누구보다도 암흑기였다고 믿고 있다. 사람마다 그릇이 달라 슬픔과 역경을 대처하는 방식도 다르다고 하는데, 난 정말 작은 사람이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이해를 해준다면 그렇게라도 말하고 싶을 심정이다. 바로 위 오빠가 사춘기를 제대로 보낸 탓, 그리고 밑에 동생이 안쓰러워 보였던 탓, 엄마 아빠에게 기쁜 일을 물어다 주고 싶었던 나의 집착까지 모여 난 나로서의 성장기를 보낸 기억이 없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어디 가서 털어놓지도 못했다. 고등학교 땐 심지어 왕따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매일같이 했다. 대학생이 되면 따로 살 거야, 언젠간 이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겠지 이런 생각으로 씩씩하게 버텨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그렇게 버텨냈던 날들 중 나도 당혹스러우리만큼 무너졌던 때가 있었다. 중학교 3학년 어느 화창한 날, 화장실 청소 당번이었던 난 친구들과 놀듯 청소를 빡빡하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악!'

비명 끝엔 내 이름이 붙었다. 그 소리에 멍했던 내 정신을 차려보니 나의 몸 반이 창문 밖으로 나가 있었다. 친구 둘이서 달려들어 나를 당기고 있었고 난 창밖으로 힘을 주고 있었다. 너무 놀라 허겁지겁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심호흡을 하고 친구에게 전했던 첫마디,


'선생님한텐 말하지 말아 줘.'


선생님께 말하게 되면 분명히 부모님께 들어갈 것이고, 안 그래도 어두웠던 우리 집 분위기가 한층 더 암흑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후로 난 그 날의 기억을 습관처럼 되내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가 아니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자 라는 생각에.


난 그때 당시에도, 지금도 절대 나 스스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살면 다 지나가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많은데 왜 죽어 내가.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정말 나도 모르게 잠시 넋 놓는 상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무서웠다. 난 살고 싶은데 힘들 때 정신이 또 한 번 나갈까 봐.


지금이라고 행복하기만 한건 아니지만 그때보단 훨씬 안정적이여 졌으니 만족한다. 그렇다고 해서 습관처럼 했던 그 기억을 이젠 버리자 이런 생각은 아니다. 20대 중후반을 지내본 사람들에게는, 그 이상을 살아본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의 상황들이 살면서 수도 없이 찾아온다는 걸 알 것이다. 나도 안정적이다 생각하면 또다시 흔들리는 일이 발생하기에 언제 어디서 유리알 같은 내 멘탈이 날 망가뜨려 놓을지 모른단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또 한 번 그날을 기억해 습관을 다져놓았다. 살짝은 괴로운 습관이지만 잊고 싶지 않기에. 이 기억은 그 날 이후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나만의 습관이 되었다.


언젠간 멈춰도 될 날이 오겠지.

아니, 다른 수단으로 정신을 잡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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