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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린종이 Nov 05. 2020

상경하던 날

아빤 낡은 골덴바지를 입고 있었지

상경하던 날

    


상경하던 날, 난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래된 스타렉스 차를 끌고 우리 가족들 다 같이 와서 집 정리를 했고, 아빠는 색이 바랜 골덴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엄마는 서울인데 딸들한테 겨우 곱창볶음을 사줬다며 투덜거리던 날. 그 날이 나에겐 버텨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몇몇 순간들이 여전히 뇌리에 꽂혀있다.


휴일이 맞지 않았던 엄마를 두고 아빠와 급하게 서울에 자취할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12월이었으니 한겨울이었다. 그때는 차보다는 그래도 지하철이 낫다는 아빠의 말씀에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와 부동산 아저씨들을 만났다. 이동하던 도중에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갔던 작은 순대국밥집. 부동산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았고, 모퉁이에 위치해 있었다. 기운이 빠지면 볼이 쏙 들어가는 아빠의 얼굴은 이미 핼쑥해져 있었다. 안에 들어가 같은 걸로 국밥 두 그릇을 주문했고, 기본으로 내어주는 깍두기는 테이블에 미니 항아리 째로 제공해주셨다. 워낙 김치를 잘 먹는 나, 그리고 아빠도 좋아하기 때문에 앞접시에 많이 담았다. 담는 동안 아빠는 그만, 그만.. 이 말만 하셨다.


"왜? 아빠도 좋아하면서"

"그 정도만 해도 돼, 남기면 안 되잖아"


의아하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보글보글 끓으며 뚝배기에 담겨 나온 순댓국을 호호 불어 먹었다. 먹는 동안 아빠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이때만 해도(지금도 조금은 그렇지만) 아빠와 둘이 있는 게 어색했고 폰만 만지작거리며 눈치껏 아빠를 살폈다. 언제 머리카락은 가닥가닥 부스스하게 올라왔으며 희끗해졌을까. 언제 이마에 주름은 저렇게 깊어졌고, 원래 아빠가 이렇게 말랐었나.


자취할 곳을 결정하고 집에 돌아가는 순간까지도 아빤 지하철 입구 사이에 내 발이 걸릴까, 앞으로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노선이나 잘 보고 다닐까 주위를 살펴주시며 하나하나 일러주셨다. 내 나이 25살이었다. '내가 다 알아서 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반 듣고 반 흘려보내며 따라 걸었다.


가끔은 서울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 때도 있었다. 아니, 많았던 것 같다. 취업했답시고 올라와서는 홀로서기할걸 상상했을 땐 마냥 신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동안 엄마의 등판이 컸구나, 가족들과 함께 있으면서 '학생'이라는 신분을 갖고 생활할 때 막연하게 하고 싶던 '독립'과 실상은 너무나도 달랐고, 가혹하기까지 했다. 그럴 때면 상경하던 날 아빠가 입고 있던 색이 다 빠진 골덴바지, 시장에서 곱창볶음이나 먹였다며 속상해하시던 엄마, 취업했다고 다이어리 선물을 주며 편지를 써줬던 동생. 이 순간들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또한 순댓국집에서 이가 아파 좋아하던 깍두기를 씹지 못하셨던 아빠.


아빠.


나를 일으키는 순간순간에는 항상 아빠가 있다. 집, 회사밖에 모르던 아빠는 오롯이 고봉으로 뜬 밥, 달달한 크림빵 그리고 드라마 보는 것. 이것들 이외에는 새벽 5시에 회사에 출근해 저녁 7시는 되어야 퇴근을 하셨고, 드라마 보다 잠들면 다시 밤 10-11시쯤 되어 밤 일에 나가셨다.(내가 취업한 후 1~2년 정도까지도 밤마다 우유배달을 하셨다) 밤일을 마치고 새벽 2시쯤 들어오시면 컵라면 한 사발 드시곤 주무시는 게 생활의 모든 것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대학을 마칠 무렵 '난 무조건 취업 일찍 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운 좋게도 원하던 상경을 하게 되었고 햇수로는 4년 차가 되었다. 남들이 '너 참 대견하다, 어떻게 버텼니'라고 할 정도로 빡세고 고되게 살았던 것 같다. 적어도 여태까지 내 삶에 있어서는.


나도 물론 괴롭고, 무너질 것 같고, 힘들었던 일들이 수시로 찾아왔지만 그때마다 밤일을 그만두게 된 아빠, 옷에 관심을 보이는 아빠, 틀니를 해서 깍두기 정도는 거뜬한 아빠, 때때로 염색을 하시는 아빠, 주말마다 엄마를 모시고 놀러 다니시는 아빠가 날 일으켜준다.


학창 시절에는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적이 많았고, 동생보다 내 편을 들어주길 바랬으며, 어디서든 내 칭찬을 하길 원했고, 잘못한 일에 꾸중하는 모습에 서운했다. 생각해보면 난 참 받기만을 바라왔구나 싶다.


이제는 조금씩 멋 부리는 아빠의 모습에 힘을 얻고, 아빠가 어디서든 멋지길 바라며, 조금이라도 맛있고 좋은 것들을 선물하고 싶다. 걱정을 덜고 웃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고, 나는 고되더라도 아빤 편했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상경하던 날을 기억한다. 덕분에 살아간다.



아빠, 낡은 골덴바지는 이제 버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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