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비, 하현상
본 게시글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며, 해당 동영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어느 날
윤재는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형, 저기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자!"
어린 목소리가 들뜬 듯 반짝였다.
윤재는 피곤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신호등이 빨간 불을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나 먼저 가서 줄 서 있을게!"
"윤기야, 기다려!"
윤재가 손을 뻗었다.
그 손끝이 닿기도 전에—
쿵.
차가 급정거하는 소리.
사람들의 비명.
눈앞에 펼쳐진 장면.
윤재는 얼어붙었다.
그 작은 몸이
도로 위에 쓰러져 있었다.
붉은 피가 천천히 도로를 물들이고 있었다.
"… 형."
동생이 마지막으로 희미하게 윤재를 불렀다.
하지만 윤재는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손을 뻗는 것조차 두려웠다.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다시 붙잡을 수는 없었다.
장례식 날 집안은 침묵에 잠겼다.
엄마는 울지도 않았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웠다.
그날 저녁 식탁에서
아빠는 윤재를 향해 처음으로 말을 걸었다.
"밥은 먹었냐."
그게 전부였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우리 가족은 일상을 이어갔다.
윤재가 방에서 나와도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학교에 가는 길
아무 말 없이 문을 닫고 나오는 자신을 보며
엄마는 그저 커피잔을 돌릴 뿐이었다.
하교 후 집에 왔을 때 엄마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
"애는 잘 지내냐고?"
친척과 통화 중이었다.
윤재는 조용히 문 앞에서 섰다.
엄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뭐… 알아서 살겠지. 원래 조용한 애였잖아."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윤재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밤 밥을 먹지 않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윤재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갔다.
그날 이후로 윤재는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했다.
초록불이 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쩌다 건널 때면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을 뻗었다면 닿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손을 놓지 않았다면
지금도 동생이 옆에 있었을 텐데.
이미 멈춘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윤재는 언제나 과거에 갇혀 있었다.
처음 소희를 봤을 때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가방에서 엉킨 이어폰 줄을 풀고 있었다.
"아, 또 꼬였네."
중얼거리면서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햇빛 아래에서 소희는 환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딘가 따뜻해 보였다.
작은 것에도 웃고
어떤 순간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사람처럼 보였다.
그게 지운이 가진 소희의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건 몇 달 후였다.
밤이었다.
퇴근 후
지운은 늘 가던 길을 따라 걸었다.
회사 앞 거리에는 야근을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나와 있었다.
문득 멀리서 웅크린 사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런데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소희였다.
소희가 길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소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두운 밤 속에서 혼자 흐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지운은 멈춰 섰다.
소희는 그저 회사를 같이 다니는
동료일 뿐이었다.
그냥 지나가는 게 맞을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위로하는 건 더 큰 부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소희가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작게.
아주 힘겹게.
지운은 다시 걸음을 멈췄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조용히 소희의 곁에 앉았다.
소희는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고인 눈이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반짝였다.
"지운 씨…"
그녀가 힘없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눈이 언제 녹을 것 같아요?"
흐느낌이 터져 나오는 목소리가 귀에 맴돌자
지운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아주고 싶다고.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에게 깜짝 놀랐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건지
그저 곁에 있어 주고 싶은 건지.
질문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도 모르고,
그저 그녀를 감싸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그저 소희 곁에 조용히 머물러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운은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6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