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녹아 눈물이 되어도

♪접속, 김사월

by 섣달

제6화. 눈이 녹아 눈물이 되어도


본 게시글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쓴 글이며, 해당 동영상을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접속, 김사월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단풍잎이 나뒹굴었다.

나무는 벌써 앙상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들었다.
가을이 떠나가는 냄새가 났다.



소희는 앓았다.

몸이 무거웠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뒤엉켜

현실과 과거가 겹쳐졌다.

1년 전의 가을이 떠올랐다.

윤재가 떠난 계절.
윤재를 마지막으로 마주했던 그때.

윤재가 말했던 약속.




"눈이 완전히 녹기 전에 만나자."




그럼에도 하늘은 맑았다.

소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따뜻한 색감의 가을
그러나 점점 겨울로 넘어가는 이 계절이
이토록 공허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을까.

눈이 내릴까.


겨울이 오면
혹시—

그런 기대를 하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윤재는 오지 않을 텐데.

이미 한 번 겪었던 계절을 또다시 겪고 있을 뿐인데.
겨울이 지나고 봄과 여름이 지나도 윤재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겨울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 겨울, 눈이 내린다면...




몸이 불덩이 같았다.

어지러웠다.
의식이 흐려지고 숨이 거칠었다.

침대 속에서도 한기가 느껴졌다.

몸은 끓어오르는데 속은 텅 빈 것 같았다.

소희는 이불을 끌어안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속에서 다시 윤재를 만났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소희는 윤재와 함께 눈길을 걸었다.

하얀 세상 속에서 둘만이 존재하는 듯한 공간.

눈이 녹지 않는 곳.
시간이 멈춘 곳.


그곳에서 윤재는 웃고 있었다.

소희도 함께 웃었다.

같은 공간에
같은 속도로
같은 신호를 맞추며
함께 걷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야 정말 윤재와 같은 세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너무나도 좋지만 너무도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눈이 내리기도 전에

이미 녹을 걸 걱정하던 윤재를 보며
소희는 마음이 저려왔다.



그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었다.

하지만 윤재와 같은 꿈 속에 있는 지금은 할 수 있다.

소희는 머뭇거리는 윤재를 향해 주저 없이 소리쳤다.



"그런 걱정하지 마."



윤재가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소희는 울분에 찬 목소리를 계속 냈다.



"눈이 내리는 순간이 얼마나 예쁜데!



그걸 즐기면 되잖아!



녹을 걸 미리 걱정하면 뭐해!"



윤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함께하는 순간이 너무 좋고
시간이 빠르게 흘러갈 정도로 행복한데
그 순간이 끝날 걸 미리 걱정하는 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윤재야. 나랑 있을 때 그런 걱정하지 마."




소희의 목소리가 하얀 눈밭에 웅웅 퍼져나갔다.

눈송이가 하나둘씩 사라졌다.

모든 것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소희는 필사적으로 꿈을 붙잡으려 했다.

겨울은 끝나고 있었다.

그 끝에서 윤재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눈이 녹지 않는 곳에 있어도
결국 현실은 녹아내린다는 것을.

눈이 녹아 눈물이 되어도
윤재라면 괜찮았다.




눈이 녹아내리는 순간 소희는 눈을 떴다.

숨이 가빠졌다.

이불을 꽉 쥔 손끝이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이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던 걸까.




창밖을 보았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맑은 하늘.
서서히 물기를 머금는 가을 공기.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꿈속에서는 윤재와 같은 신호 속에서 함께 있었는데.

깨어나면 또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공허했다.

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소희는 주저 없이 휴대폰을 들었다.

손끝이 떨리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윤재의 번호를 눌렀다.

번호를 바꾸었을 수도 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신호음이 길게 울리지 않았다.



"…"




숨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이 메였다.

단 한 마디만이 나왔다.



"…아파."



열로 붉어진 볼
흐릿한 의식
흐르는 눈물.

단단했던 소희의 신호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윤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는 전화선 너머로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소희의 입술이 다시 떨렸다.

눈물이 한 번 더 떨어졌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떼쓰듯 말했다.




"나 아파. 윤재야."




그 이름을 부르자
숨이 터졌다.

모든 감정이 함께 터져나왔다.

어른스러워야 한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애써 눌러왔던 감정이 한순간에 쏟아졌다.

소희는 끝내 윤재에게 손을 뻗었다.




그 손을 잡을지 말지는

이제 윤재에게 달려 있었다.





같은 곳에서 같은 속도로 심장이 뛴다면
당신의 꿈속으로 접속할 수도 있겠죠
작고 여린 당신 등에 나의 심장을 포개고
당신의 꿈속으로 신호를 맞춰 봤어요

내 못난 마음 꿈에서는 다 용서해 주세요
너와 함께라면 내 인생도 빠르게 지나갈 거야

울고 웃고 떠드는 따뜻한 밤이 지나면
당신은 야단맞는 곳으로 돌아가겠죠
아침은 두려워요 텅 빈 공기 속의 누에고치
당신의 꿈속으로 신호를 맞춰 봤어요

내 못난 마음 꿈에서는 다 용서해 주세요
너와 함께라면 내 인생도 빠르게 지나갈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내 인생도 빠르게 접기


- 접속, 김사월





7화에서 계속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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