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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톢이 Sep 10. 2021

옥상 바이브

옥상텃밭깨앰성

  내가 다니는 회사 건물은 굉장히 오래됐다. 비가 오면 물이 떨어지고 겨울에 수도 얼어 물 안 나오는 건 기본 에어컨 설치가 어려운 곳에 꾸역꾸역 해서 툭하면 에어컨 가스가 센다. 외벽은 얇고 금이 가서 당연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이런 곳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3층은 대부분 공유 오피스고 2층과 1층은 요양병원이다.

 2018년도 가을쯤 동네에 행복마을관리소가 생기면서 옥상에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다. 사실 옥상은 거대 주차장이라 밭을 키우는 게 엄연하게 불법... 플라스틱 화분을 가지고 한 개 두 개씩 심기 시작했다. 현재는 20개가 넘긴 한데 옥상의 1/10도 사용하지 않았고 옛날에 차가 올라오게 설계된 곳이라 흙 하중이 문제가 되진 않아서 매우 다행이다. 옥상텃밭의 문제가 흙 하중을 견디지 못해서 금 가는 경우도 있고, 물 주다가 옥상 바로 아랫 건물에 물이 세는 경우가 있더라고.

3년생 도라지

 나도 대세(?????)를 따라 19년부터 민트를 시작으로 지금은 딜이, 바질, 토란을 키우고 있다. 그런 식으로 밭이 하나둘씩 늘었고 편견 없이 커다란 화분엔 고추나 가지, 토마토를 키운다. 그래서 또 대세를 따라 나도 화분에 파를 키우고 있다.

편견없는 화분서 크는 파

 올해는 이 건물에서 옥상 밭이 유행이 되었는데 2층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합세하면서 본격 미세 플라스틱 옥상텃밭이 시작되었다. 심지어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대부분 조선족 분들인데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셔서 미세 텃밭은 쉽게 가꾸신다. 나 같은 농부 인척 하는 찌끄레기에게 훈수도 많이 주시는데 매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잡초와 잡초 아닌 것의 구분, 상추는 뜯을 때 한 번에 삭발로 뜯어야 건강한 잎이 난다던지 토마토나 고추 곁가지는 다 뜯어라던지 나는 애초에 이런 상식 없이 잡초 같은 허브를 키우니 뭘 알겠는가. 하지만 저런 훈수 전 말보다 개 빠르게 손이 나아가 곁가지와 잡초는 다 뽑아놓으신다. 그래서 내가 할 건 없다. 개이득!

 점점 옥상엔 건물 사람들이 화분을 버린 건지 키워달라 올린 건지 접란이라던지 구문초가 올라와 있고 일 년 넘게 찾아가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엔 정말 진심으로 예쁘게 키운 외목대 꽃 화분을 훔쳐가서 대 분노를 했다. (누구냐고!!! 아오!!)

 이젠 날이 선선해져 바질은 꽃을 피웠고 씨 준비 중이다. 사람들이 오며 가며 한 송이씩 빈 화분에는 꽃도 심어놨다. 나팔꽃이랑 채송화는 어디서 씨가 날아온 건지 알아서 꽃을 피우는 생명력을 보여 꽤나 감독적이었다. 밭이 미세 플라스틱이라 매우 염려스럽지만 일하기 싫을 때나 눈이 아플 땐 옥상에 식물들이 평안함을 준다. 자주 돌보는 것도 아니고 방치 모드도 아닌 애매하게 키우는데 잘 자라는 허브에게 특히 정이 간다. 내가 다 키우는 것도 아닌데 옥상에 꽃이나 작물에 관해서 모두가 나에게 고하는 일도 많아져 당황스럽지만(왜냐면 나도 뭔지 몰라) 덕분에 한 숨 편안해진다는 소릴 들으면 생명을 돌보는 일을 부지런히 계속하는 것이 숙명인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이게 바로 옥상 바이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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