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덕후를 모아라
갑자기 추워진 가을날. 10월인데 이 날만 5도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추워서... 갈까 말까 고민이 들었지만 옷을 두껍게 입고 출발했다.
네이버 지도가 나를 피크닉 건물 뒤로 안내했다. 입구가 따로 있는 줄 모르고 입구가 저렇게 좁냐고 욕했는데 네이버가 잘못 알려준 거였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다시 정문으로 입장해 전시실에 들어갔다. 정원 전시의 끝무렵이고 갑자기 추워져서 식물 상태가 영 누렇고 비실비실했다.
1층엔 야채나 식물의 풍선(?) 전시였고 비실비실한 정원을 지나면 흙을 확대해서 비싼 티브이에 구현한 전시로 지나간다. 개인적으론 사진을 찍을 수 없던 3층 전시가 좋았는데 과거의 식물 덕후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전시였다. 감명 깊었던 사람은 데릭 저먼과 피트아우돌프이다. 두 사람은 궤가 좀 다른데 피트 아우돌프는 커다란 느낌이고 데릭 저먼은 조용하고 소소한 느낌이랄까... 피트아우돌프는 정원 관련 다큐도 있으시다. 정원을 만들고 설계하는 사람으로 주로 공공의 공간을 바꾼 사람이다. 뉴욕의 버려진 철도나 미국 장마 피해지역을 복구하는 작업등 나라 단위의 작업을 했다. 전시장에도 그의 작업을 길~~~ 게 표현해놓았다. 짧은 영상이 패드 사이즈로 배치되어 있는데 영상 중 생각나는 정면이 하나 있다. 그가 저 꽃은 목련인데 이런 계절에 꽃망울을 맺고 핀다는 말을 한다. 식물 하나 꽃 하나가 언제 피고 나는지 땅이 얘들에게 어울리는지까지 세세하게 생각하는 섬세함으로 커다란 부지를 설계하다니 참으로 대단하고 타고난 사람이다.
데릭 저먼은 에이즈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며 척박한 땅에 집을 지어 정원을 가꾼다. 여기도 짧은 영상도 있는데 정말 고독하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영상이다. 도로가 가까이 있어 차가 지나가고 바람이 격하게 부는 사막 같은 땅에서 식물을 키웠다. 황량한 곳에서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며 생명력을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죽음도 받아들이는 생활을 했을 거라 상상해본다. 쓸쓸함과 식물에 애정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정원만들기 전시에 가장 감명 깊었던 곳은 옥상정원이었다. 조경가 할모니 정영선 스생님이 만드셨다. 정영선 선생님이 하신 호암미술관과 선유도공원도 엄청 좋았는데 옥상도 당연히 좋았다. 마루에서 앉으면 보이는 꽃들이 작고 귀엽다. 차 한잔이 어울리는 공간이다. 이곳에선 남산도 보이고 낡은 건물과 높은 건물이 같이 보여 세월의 흐름이 보인다. (그렇다 해도 양쪽 건물 다 비쌀 듯 서울은 다 비싸) 1층에서 식물들이 제정신이 아니라 실망스러웠는데 옥상에 오니 좋다. 한국 정원이라면 이런 바이브지! 비록 날은 쌀쌀했지만 바람에 살랑이는 식물을 보며 오래 앉아있었다. 나도 언젠가 정원을 가질 수 있겠지? 식물 소통하는 식덕후가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