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을 키우자

우리 집이 네덜란드다

by 성포동알감자

작년 11월 깐 마늘을 심었다. 진짜 깐 마늘 심은 게 아니라 튤립 구근을 심었다. 원래라면 10월부터 심는데 코로나로 배가 안 떠서 10월에 산 구근이 한 달 지나서 왔다.

튤립에 곰팡이가 있어 소독해서 심으라던데 흙 가득 덮으면 괜찮아서 양파 같은 껍데기만 가서 오밀조밀 심었다. 튤립은 양파 같은 까도 까도 까지는 씨앗이다. 씨앗에 영양분이 많은 상태라 과습에 약하고 물을 많이 먹는다(????) 그냥 물 많이 주고 네덜란드처럼 폭풍 바람 쐬줘서 과습 방지하라는 이야기. 물을 한번 줄 때 가득 주고 찬바람 환기하고 가끔 자라는지 모르겠지만 영양제도 한 번씩 줘야 한다. 화분은 토분 말고 수분 유지가 되는 플라스틱 화분이 좋고 깊은 화분에 좋다. 재작년엔 튤립 잘못 심어서 다 망쳐가지고 이번엔 공부를 단단히 했다. 심은 뒤 물을 주고 춥게 베란다 구석에 두었다. 튤립은 추워야 꽃눈이 생겨 이미 저온처리된 구근을 판매하지만 키울 때도 서늘하게 키워야 꽃이 건강하게 나온다.

1월까진 쟤가 자라는 건가? 의심이 든다. 추운 날에 새싹 올라오는 게 신기하기도 한데 또 너무 느려서 과연 저게 꽃이 필까 했다.

그리고 1월이 지나 2월이 오면서 나무들이 새순으로 봄을 알리듯 튤립이 이른 봄을 알렸다. 더딘 성장이 갑자기 빨라진다. 잎이 쑥 올라오더니 꽃이 갑자기 폈다. 캔디 프린스라는 튤립이다. 줄기 나기 전에 꽃이 튀어나와 짧뚱 튤립이겠다 했는데 갑자기 키가 훅 컸다. 개화 후 날이 추워지면서 보라 튤립을 한 달을 내내 감상했다. 3월은 춥다 해도 해가 뜨거워서 8~9일이면 꽃이 지는데 이때 운이 좋았다.

그 뒤를 이은 튤립은 아프리콧 임프레션 튤립. 꽃 대가리(?)가 상당히 큰 튤립이다. 핑크, 코랄이 섞인 오묘한 머리 큰 튤립.

그리고 3월 초 이상기온으로 따뜻해서 튤립 10개가 한 번에 개화했다. 빨갛고 노란 애는 월드 페이버릿, 노랑이는 빅스마일이다. 저 밑에 노랑주황이는 블러싱 아페도른.

얘는 아펠도른. 쾌적한 회사생활을 위해 튤립을 캐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화한 핑크 튤립 멘톤이다. 튤립 생김새도 모르고 장바구니 막 담아서 개화하고도 내가 이것들을 샀었나? 어리둥절했다. 기나긴 지루한 겨울을 버티고 꽃을 핀 튤립들. 장하다.

인간은(내 상사들) 자기 밥그릇만 챙기고 남은 사람들 똥이나 먹이는데 튤립은 노력한 만큼 피워준다. 인간은 시끄러운데 꽃은 조용히 곁에 있다. 인간은 못생겼는데 튤립은 예쁘다. 튤립 장하다!

튤립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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