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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톢이 Nov 29. 2022

바야흐로 김장의 계절2

김치는 사 먹자

 11월 26일 토요일 드디어 김장의 날이 다가왔다. 올 가을은 며칠만 춥다가 11월 말까지 따뜻한 날이 이어졌다. 덕분에 진달래, 개나리, 붓꽃이 피고 꽃봉오리가 맺히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덕분에 우리의 배추와 무는 커가는 시간을 얻었다.

 김장날 텃밭 멤버끼리 조를 나누어 밑 작업을 하기로 했다. 7시 조는 배추를 뽑아 절이고 10시 조는 무와 쪽파를 뽑아 다듬기로 했다. 오후엔 모두가 모여 김장을 하기로 했다. 무슨 수능날처럼 어제까지 따뜻했던 날은 사라지고 코끝 시린 초겨울이 다가왔다. 강한 바람이 불었고 옥상 해가 센데도 패딩을 입어도 추운 날이었다.

 나는 10시조였고 우리 팀은 절여진 배추를 뒤집고 무를 뽑고 쪽파를 다듬고 속에 들어갈 무를 강판에 갈았다. 다듬기를 끝내고 점심 먹고 모이기로 해서 시간이 넉넉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후딱 가 버렸다. 김장 밑 작업하면서 추웠는지 목이 까끌했다. 몸도 노곤해져서 김장을 할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조상님들 지혜가 있다. 기운을 나게 하는 건? 역시 막걸리지. 김장 시작 전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김장준비에 나섰다.

 재배한 배추는 속이 차지 않았고 크기가 작았다. 무는 무대리처럼 모두가 작고 똥똥했다. 크기는 작았지만 무랑 배추는 달달하고 시원했다. 배추보다 무가 많아 깍두기도 담그기로 했다. 하지만 양념 양 조절 실패로 깍두기는 할 수 없었다. 깍두기 한다고 무 다 썰어버렸는데... 어쩔티비... 당연히 속 레시피는 아무도 알아오지 않았고 인터넷으로 백종원 김장 레시피를 따라 대강 만들었다. 특제 비법으로 육수 대신 비비고 사골육수도 넣었다. 사실 원래 목표는 비건 김치였는데 백종원 레시피는 비건이 아니므로 젓갈과 육수만 배제한 비건 김치를 소량 따로 담갔다.

 사실 나는 김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10년 가까이 엄마와 김장을 직접 하고 있고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손이 많이 가는지를 알고 있어서 더 하기 싫었다. 다행인지 나 빼고 다들 즐겁게 김장을 하더라고. 나는 모른 척 뒤로 빠져있으려 했다. 근데 그럴 수 없었다. 날이 추워서 빨리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었다. 결국 무도 바락바락 닦고 쪽파도 다듬고 진딧물이 잔뜩 묻은 배추도 씻고 배추 속도 넣고 설거지도 쫌 하고 내 계획보다 많은 일을 했다!! 김장과 함께 먹겠다고 야채 전도 부치고 두부도 삶고 뒷정리까지 모두가 추운 날 엄청 고생했다.

 계획과 다르게 깍두기는 하지 못했고 무청을 다듬어 옥상에 말리는 것도 하지 못했고 안동 느낌의 배추전도 하지 못했고 그냥 지쳤고 계획한 걸 하지 못했다. 그래도 김장은 완성했다. 진짜 모두 대단하다!  

고통받는 전장인

 그렇게 담근 김치는 엄청 맛있게 되었다. 우리가 고생했기 때문에 맛있다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놀랍게도 맛있다. 노지 배추라 잎이 질긴데 엄청 아삭하고 고소한 김치가 되었다. 역시 원재료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나 보다. 망할 줄 알았던 배추와 무 농사가 성공해 김장까지 하다니 기특하다.


하하하하!


 밭에서 바로 재배한 야채만큼 맛있는 게 없다. 먹으면서 잡초도 뽑고 모종도 직접 심고 벌레도 잡고 소주로 진딧물도 죽인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혼자 한 것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했기 때문에 배추와 무 농사 성공이 가능했다. 우리는 전문 농부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 했으면 망했을 거다. 이번 김장을 계기로 텃밭 멤버 모두가 햇살이 주는 대자연의 위대함과 작물의 성장이 주는 기쁨을 느끼고 봄버전 텃밭 모임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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