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말이다. 친구를 만났다.
친구랑은 이태원 어딘가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이태원, 녹사평 등이 적혀 있는 도로 표지판 등을 군데군데 보면서, 나의 방향감각을 확인하였다. 드디어 약속한 식당에 도착했다. 하지만 주변은 모두 깜깜한 흑막처럼 어두웠고, 오로지 나와 내 친구가 앉은 테이블만 환하게 불이 비쳐 있었다. 너무 환한 노란색 백열등 조명에 눈이 부셔서 주변이 더 어둡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친구 뒤로 벨벳 색 커튼이 양쪽으로 묶여 있었다. 마치 어린 소녀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친구는 아주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조명 탓인지 친구의 얼굴이 더 빛나고 밝게 보였다. 메뉴는 치즈볼 튀김이 나왔는데, 내가 시켰는지 친구가 시켰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한참 이야기를 나누려던 찰나에 메뉴가 나왔다. 그런데 분위기에 맞지 않게 흰색 셔츠와 빨간색 조끼, 검은색 정장 바지를 입은 고급 식당에서나 볼 듯 한 잘 차려입은 웨이터가 와서 서빙을 해주었다.
여기가 이런 고급 식당이었나! 두리번거려봤지만, 너무 어두워서 주변이 잘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벽에 클래식 액자에 모조품임이 틀림없는 명화들이 여기저기 걸려있는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뭐 아무렴 어떤가.
이런 식당도 있고 저런 식당도 있는 법이지. 다시 고개를 돌려 친구를 바라봤다. 친구는 이 치즈볼 튀김이 너무 식었고 딱딱하다고 불평을 하였다. 나도 친구의 말에 동의하며 ‘이건 너무 심하게 맛이 없잖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친구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웨이터를 불렀다. 웨이터는 우리의 불평에 군말 없이 새로운 치즈볼 튀김을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는 연신 고개를 구부리며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한 손에는 흰색의 사각으로 접은 테이블보를 감싼 채 얼굴도 들지 않고 60도 정도의 각도로 구부린 채 우리의 말을 듣고 사라졌다.
나는 그의 작은 키와 얼굴이 연예인 누구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얼마 후, 드디어 따끈따끈한 치즈볼이 다시 서빙되었다. 나는 맛은 그다지 없지만 아까보다 괜찮다고 하였고, 친구는 여전히 맛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다시 또 웨이터를 부르진 않기로 했다. 친구가 요새 너무 즐겁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친구의 환한 미소를 보니 나도 절로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대뜸 나보고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섭섭하다며 내 애가 벌써 중학생인데 무슨 소리 하냐며 우리가 안 만 난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그것까지 까먹었냐며 친구를 나무라며 뾰로통해졌다.
하지만 친구는 금세 미안하다며 진짜 까먹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였기에 우리는 다시 치즈볼로 대화를 옮겨 요새의 근황을 주고받았다. 나는 이러저러한 힘든 감정들을 이야기했고, 친구는 쉬고 있는 게 다행이라며 위로해 주었다. 그러더니 가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게 몇 년 만에 만났는데 벌써 가냐며 깜짝 놀랐지만,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 친구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친구가 앉았던 의자에는 사람이 있었던 흔적조차 없이 텅 비어진 의자가 되었다. 마치 한 편의 마술쇼를 보는 것 같았다. 마술사가 ‘뾰로롱’ 마술 지팡이를 흔들자, 드라이아이스가 펼쳐지고 등장인물이 사라지는 한 편의 매직 쇼 말이다. 물론, 마술사도, 마술 지팡이도, 드라이아이스도 없었지만.
그러다 어디선가 방송이 나왔다. “자 이제 모두들 내려갈 시간입니다.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러자, 사람들이 우르르 긴 줄을 서기 시작했고, 나도 어느덧 그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어느덧 수십 명은 되는 듯했다. 이 식당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나 싶기도 하고, 도대체 내려갈 시간이라는 건 무엇인지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여기 온 사람 모두 다 돈 때문에 온 거 아니요?”라고 말하자, 또 어디선가는 “아니오. 나는 사랑 때문에 온 것이요!”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웅성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돈이다, 사랑이다’로 다들 설왕설래하고 있던 찰나에 누군가 줄 맨 앞에 와서 “여기 그럼 돈이 목적으로 온 사람은 왼쪽에 서시고, 사랑이 목적으로 온 사람은 오른쪽으로 서시오.”라고 외쳤다. 그러자 다들 수군수군 거리며 자리를 이동하였다. 나는 돈 때문에 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 쪽에 당연히 섰다. 생각보다 ‘돈’ 쪽의 방향에 선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차례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기 시작한다.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는 나는 드디어 내 차례가 되자 엘리베이터를 타는 입구처럼 보이는 탑승구 안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순간, 깜깜한 터널을 한참이나 지난 후, 어딘지 모르는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곳은 지상이었고, 나는 윗 세상을 다녀온 것이었다.
그리고 잠에서 깼다. 꿈이라고 하기 엔 너무나 생생한 그 세계. 그 친구와의 만남. 모든 게 현실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기분. 그 친구랑 만나서 너무나 반가웠던 건, 그 친구의 밝은 얼굴을 오랜만에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생 다시 못 볼 얼굴이기 때문이었겠지.
이태원과 녹사평 어디쯤에서 만난 건, 내가 지난 몇 주간 한 번 이상씩 지나쳐 봤던 도로 표지판 일게다.
치즈볼 튀김은 며칠 전 먹었던 비슷한 메뉴였을 테고, 웨이터가 다시 갖다 준 건, 주문이 잘못 들어가서 다시 음식을 갖다 줬던 며칠 전 일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쉬기 잘했다고 위로해준 건 정말 내가 그 친구에게 받고 싶었던 위로일 수도 있고 내 마음속에서 나 스스로에게 하는 위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친구와의 만남은 너무 짧았고, 친구는 너무나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고, 친구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몇 년 만에 드리는 전화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분들은 그 집전화기 번호를 사용하고 계셨다. 나처럼 그 친구를 잊지 못하고 전화하는 이들을 위한 것인지, 노인네들의 관습인지 알 수 없지만, 혹여나 ‘지금 거신 전화는 없는 전화입니다’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꿈에서 봤던 친구의 모습을 전했다. 그분들은 전화기를 돌아가며 받으셔서 아버지, 어머니 모두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너무 오랜만에 거는 전화라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실 게다. 그냥 죽은 자기 딸내미의 친구라는 것 밖에 …….
하지만 자주 전화를 달라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다. 벌써 올해가 10주년이라 한다. 그래. 그렇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지.
꿈속에서 이 세상 저 세상 왔다 갔다 해서인지, 몹시 두통이 심한 날이다.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될 것 같은 타이레놀을 또 꺼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