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자의 꿈
일을 쉬고 있는지 1년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도 꿈에서는 직장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일을 이렇게 밖에 못하냐며 핀잔받고, 나는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관리자에게 벌벌 떨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실제로 18년 동안 근무하면서 이랬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단지 언젠가 이런 일이 생기는 거 아닐까 불안해했던 적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이 나의 영혼을 잠식하여 이렇게 주기적으로 꿈에서 재현되어 나의 공포를 극대화시킬 거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최소한 의식이 있었을 때는 말이다.
아니면 나 대신 누군가가 내 업무를 맡아서 처리하게 된다. 그 사람은 내 업무까지 맡아야 하니 일이 두 배 또는 세 배가 되었다. 그는 나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다. 너 때문에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나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미안하고 용서를 구하고 또 구한다. 하지만 이 역시도 실제로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다. 실제로 나 대신 업무를 맡게 된 사람들은 나의 갑작스러운 ‘공황장애’에 적잖이 놀라고 많이 위로해주며 걱정 말라며 다독여줬다.
그렇지만, 난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을 가지고 지난 6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업무 개편이 이루어진 후, 나는 ‘당연히’ 없는 사람이 되었고, 그 조직은 ‘당연히’ 내가 없어도 평화롭고 원활하게 잘 돌아가고 있다. 나의 애매모호한 ‘휴직’ 상태라는 것이 나의 ‘공황’과 어울려 직장에 대한 그간의 스트레스가 무의식의 공간인 꿈에서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휴직’이라는 애매모호한 상황을 이 어려운 경제 시국에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돌아가기 끔찍한 공간과 일에 대해 ‘휴직’이라는 두 글자로 나의 미래가 얽혀 있는 게 나의 과거를 떨쳐내지 못하는 올가미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차라리 ‘퇴사’ 권고였으면, 당연히 나는 미련 없이 그곳을 빠져나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픈 자에게 ‘퇴사’라는 매몰참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인지, 업무 공간에서 ‘공황 발작’을 일으켜 응급실에 실려 갔기 때문에 ‘산재’ 신청이 가능한 요건(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입증) 이 된 것에 대해 자비로움을 베풀어 주기 위해 ‘휴직’을 권고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는 그 당시 빨리 이 공간을 내가 비워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 배려라 생각했다. 언제 혹시 모를 발작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을 데리고 있는 게 그들 역시 꽤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오전에 면담을 실시하면서 (그 날은 ‘공황 발작’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고 병가를 3일 쓰고 두 번째 출근을 한 날이었다.) 당장 내일부터 남은 연가 사용 및 휴직 처리를 하겠다는 행정적인 통보를 권유받았다. 그래서 부랴부랴 오후에 짐을 필요한 것만 쌌다. 나는 일주일간 내가 업무를 지속할 수 있을지 지켜봐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하였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허공의 메아리 같은 글자들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관리자들은 빨리 내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고, 금요일까지 결정을 미루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오후에 주섬주섬 짐을 싸는 동안, 관리자는 내 주변의 인물들을 한 명씩 면담하며 내 업무에 대한 후임자를 물색하였다. 한 명씩 불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뿐더러, 난 그들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리더가 이렇게 무너졌다는 건, 나의 업무 능력, 나의 18년 동안 행해왔던 업무에 대한 자부심, 개인적인 자존심마저 한꺼번에 무너진 순간이었다. 나는 결국 최소한의 짐만 챙겨서 그곳을 황급하게 빠져나왔다. 그들은 나에게 위로의 말들을 건넸지만, 난 그 말들이 진심인 것도 알지만, 나의 ‘나약함’을 함께 동정해준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건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들은 진심으로 날 걱정해주었을 테고, 새로운 리더로 지명된 이에 대한 호칭이 그렇게 재빠르게 바뀐 걸 보며 태세 전환이 빠른 그들은 내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테고, 오히려 더 유능한 리더가 탄생한 순간을 기뻐할 수도 있었을 수도 있다.
‘공황’이 나약함으로 생긴 질병은 아니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였다. ‘그 정도로 정신력이 약한 줄 몰랐다’, ‘마음을 굳게 먹지 못해서 그렇다’ 등등 그들에게 난 ‘나약함’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물론 꼭 나보다 연배가 높은 사람들만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가장 많이들은 질문은 ‘도대체 뭐가 문제였나?’이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11개월이 흐른 시점에서도 나도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순 없다. 물론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다. 그저 가장 유력한 건 직장 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일 뿐이다. 그럼 더 파고들어 어떤 스트레스가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냐?라고 물으면 백가지도 더 넘게 나열할 수 있지만, 이게 진짜 이유일까?라는 생각은 끊임없이 스스로 자문해본다.
의식이 있는 낮의 생활과 무의식으로 뒤덮인 밤의 세계는 점차 간극이 커져가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이런 무의식의 꿈들을 조정하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의식이 있을 때 이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꿈일 뿐이야’, ‘당장은 일어나지 않아’라고 의식적인 사고를 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다시 루시드 드림이라도 시도해봐야 하나보다. 이건 꿈이야. 자기 전에 100번은 외치고 자야 겠다.